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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ul 29. 2023

구의 증명

최진영의 소설, '구의 증명'을 읽었다.

구와 담이 번갈아가며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둘의 시선을 교차해 따라가며 읽었다. 현실에 바탕을 둔 이야기인데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강렬하게 독자를 붙드는 것은 작가의 섬세하고 단단한 감정묘사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읽으며 더 많이 안타까워하고 더 많이 서러웠다.



구와 담은 어린 시절부터 서로 깊고 친밀한 관계였고 자라면서 '연골처럼' '딱맞는 관계'가 된다. 구의 죽음을 마주하고 담은 그의 삶과 존재를 새겨놓고 싶어한다. 결국 담은 구를 '증명'하기 위해 장례를 치르는 대신 다른 방법을 택한다.


사실 이 책을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고 싶어 추천했었지만, '그 방법'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함께 읽지 못했다. 독자들을 불편하게 하는 지점, 어딘가 개운하지 않은 지점, 꺼끌꺼끌한 면이 있는 책이 함께 읽고 나누기는 더 좋았을텐데, 좀더 적극적으로 추천하지 못했던 것이  많이 아쉽다. 사실 나는 책속에 묘사된 담의 행위가 실제가 아닐 수 있다고 생각했다.


 '네가 살아야 나도 사는' 사랑, ' 행복하자고 같이 있는게 아니라 불행해도 괜찮으니 같이 있는' 절절한 둘의 사랑도 오래 남지만, 소설 속에 내내 등장하는 죽음과 그 죽음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너무 아파서 문장들이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사라지지 않았다. 부모의 빚을 갚다 결국 죽음으로 내몰리는 청년의 삶도, 제대로된 어른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던 어린 아이의 죽음도 너무 아파서 읽어내려가기가 힘들었다. 그건 내가 부모라서 그렇고, 어른이라서 그렇겠지. 구와 담의 사랑이야기가 사랑으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다.


작가는 소설에 대해 생각도 감정도 들지 않을 만큼 텅 빌 정도로 한 달 동안 오로지 이 소설 썼다고 한다. 애인과 함께 있을 때 그의 살을 씹어먹는 상상을 했다던 작가의 말 처럼, 나도 사랑하는 사람을 먹는 상상을 곧잘 한다. 아니 나는 상상으로만 그치지 않고 실제 행동도 했다. 아이가 갓난쟁이던 시절에도 팽이버섯같은 발가락을 입에 넣어 오물거렸고, 주름 하나 없는 무릎과 굳은 살이 없는 뒤꿈치와 여리고 여린 턱을 깨물며 충족감을 느끼곤 했다. 넘치는 사랑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그 사랑을 스스로가 감당하지 못해서 엉덩이며 배며 아이의 온 몸을 물고 빨았던 기억. 그 행위가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었을까.


그래서 담이의 행위가 사실이라면, 차라리 온전히 한 조각도 남기지 않고 다 받아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야 천만년 만만년 기다리는 일 없이 구도, 담도 평화로울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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