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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un 05. 2023

불쌍한 게 안장인지, 엉덩이인지

그래도 즐거운 자전거 나들이

  연휴, 넷이서 하루종일 집안에서 뒹굴대며 지내고싶지않다. 갈만한 곳은 모른다. 그렇다고 미리 여행계획을 짜놓은 것도 아니다. 집에서 세 끼 꼬박 밥해먹기는 더더욱 싫다!


  다급해진 마음에 엄마는 아들과 아빠를 꼬드깁니다.  

"자전거 나들이라도 가자!"


  어디라도 나가도 싶었던 엄마의 간절함(?) 통했던 걸까요? 오후 4시 반, 거의 두 계절동안 방치되어 있던 자전거 먼지를 닦고, 조이고, 바람을 넣고 대책없는 무계획 가족이 즉흥 자전거 나들이를 떠났습니다.


  작년 가을에 타고 겨울 지나 봄을 넘겨 여름이 시작되는 6월에 타는거니 진짜 오랜만이었네요. 간만에 페달을 밟으며 달리니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길가에 늘어선 나무들은 푸릇하고, 모내기 끝난 논에 물은 그득하고 바람은 시원하고.  잠시 멈춰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주변 풍경을 즐기고 싶었지만, 이 남자들, 한 번도 한 쉬고 달립니다. 엄마 궁뎅이가 짓물러도, 가족사진 한 장 찍자 애원해도, 아무것도 들리지않는 지 한 줄로 쭉 달리기만 합니다.


  이전에는 아빠가 맨 앞에서 달렸는데, 이젠 다 큰 아들이 길을 안다고 자기가 앞서서 달려가더군요. 질세라  작은아들이 그 뒤를 바짝 쫓고요. 엄마 아빠는 아이들 뒤에서 따라갔습니다. 육아가 그런것이겠지요. 처음에는 앞에서 끌어주지만 아이들이 자라면 먼저 가는 아이들을 뒤에서 지켜봐주는거요.


   뒤에서 보다보니, 100킬로그램이 넘는 큰 아들의 엉덩이를 받치고 있는 안장이 지나치게 작아  보였습니다. 자기보다 세 배는 됨직한 엉덩이틀 떠받쳐야하는 저 안장이 딱한건지, 손바닥 만한 안장에 얹혀져 있는 아들의 엉덩이가 더 딱한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는데, 생각해보니 남 얘기할게 아니더군요. 내 뒷모습도 만만치 않겠다 싶어 살짝 슬퍼졌습니다

  그렇게 자전거로 비포장 흙길을 40여분 달리면 소래포구가 나옵니다. 나름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와 갈매기, 짭조름한 갯내를 즐길 수 있습니다. 거기서 10분 쯤 더 가면 큰아들이 애정하는 조그맣고 오래된 옛날돈까스집이 나옵니다. 사실 오늘의 목적지는 바로, 그 돈까스집입니다. 나들이, 라이딩, 운동, 아니요, 가서 이른 저녁 먹고 오는거였습니다.


  한 시간 못되어 목적지인 돈까스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때가 5시 20분쯤이었던것 같아요. 아이들이 커서 쉬지 않고 금방 가더군요. 작은 아들이 아직 초등 저학년일 때는 쉬엄쉬엄 갔던 길인데, 괜히 어릴때 생각이 나니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이 주문들어갑니다. 넷이서 메뉴 다섯 개. 다들 그런거죠? 고딩 큰 아들이 2인분 씪 먹고 그러죠? 네? 우리만 돼지인건가요? 아니라고 해주세요. 제발.

  

 음식 사진은 없어요. 찍을 틈도 없이 젓가락부터 돌진하거든요. 다 먹고 음료수 마시면서 와이파이 연결해서 게임도 한 판 즐기는 두 아들을 보며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고팠던 마음을 접었습니다. 어차피 거기서도 핸드폰만 들여다보겠구나 싶어서요. 아이들은 핸드폰에 빠지고, 먼저 먹은 남편이 흡연타임을 즐기는 시간 동안 저만 홀로 멍하니 소화시키고 있어야했습니다.


 돈까스 다 먹고 나서 바로 집에 가기는 너무 아쉬워 근처에 있는 리퍼브샵에 들렀습니다. 큰아들의 목적이 돈까스였다면 리퍼브샵은 남편의 목적이었죠. 저렴한 중고상품을 구경하다 쓸데없는 충동구매를 하게하는 개미굴같은 곳인데, 남편은 여기를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이번에도 역시나 탕진잼을 누렸습니다.


105 사이즈 남자사각팬티-살쪄서 배가 쪼이는 큰아들용 팬티, 이건 생필품이라고 쳐요,

지구젤리-이것도 편의점에서 비싼건데 저렴하게 낱개 묶음으로 파는 것이라며 애원하는 작은애에게 넘어가서 샀어요. 먹는거니 남는거라고 쳐요,

비누방울- 이건 내 장난감이라며 장바구니에 퐁당........도대체 왜 샀을까요?


  이런식으로 소소하게 지르고 장바구니를 달랑거리면서 노을을 즐기며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배가 불러서였을까요? 갈때보다 조금 더 천천히 페달을 밟았습니다. 두 형제는 사람들이 오가지 않을때는 자전거를 나란히 하고선 세상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주절거리며 낄낄대고 나는 그 모습을 어떻게든 남겨보고 싶어 한 손으로 사진을 찍어보려 낑낑대고. 그러는 동안 서쪽하늘에는 노을이 번지기 시작하고 동쪽하늘에선 둥그런 달이 떠오르더군요. 이런 순간속에 함께 있을 수 있어 참 감사했습니다. 비록 가족 사진 한 장 남기진 못했지만요.

집에 도착하니 8시 반 쯤되었습니다. 덜컹거리는 흙길을 쉬지 않고 달렸더니 핸들 쥐었던 손목도 아프고, 무릎 시리고, 엉덩이도 얼얼한데, 아이들은 쌩쌩하더군요. 에라 모르겠다, 편의점에서 맥주부터 샀습니다. 언제나 중요한건 뒤풀이 아니겠어요?



ps- 들어오면서 큰아이 공부 문제로 살짝 다퉜다고 고백합니다. 다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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