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어라 Aug 01. 2023

고무나무 뿌리가 등을 밀어준다

  집에서 키우는 오래묵은 고무나무가 마구잡이로 자라 가지가 휘어졌다. 식물이 입이 없으니 망정이지 있었다면 더벅버리 노총각처럼 보기 흉해진 가지 좀 정리해달라고 불평불만을 쏟아냈을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비스듬히 누워버린 고무나무 가지 끝 부분을 잘라 다듬어야겠다.

제일 왼쪽이 고무나무 줄기

  목질화가 이뤄지지 않은 아직 부드러운 연두색 가지 윗부분을 비스듬히 자르고 무성한 잎도 몇 장 떼어낸 다음 물에 담근다. 이렇게 한 달쯤 없는 셈 치고 놔두면 조그많게 흰 뿌리가 나온다. 그때까지 한 달이 걸릴지 두 달이 걸릴지 모른다. 가지는 충분한 물과 양분, 적당한 햇볕이 있는 곳에서 성장을 멈추고 뿌리에 집중한다. 온 에너지를 잘린 가지 끝부분에 모아 새 뿌리를 낸다. 그동안 뿌리의 성장을 방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물을 갈아줄 때마다 뿌리가 나오고 있다는 걸 확인하다가 손가락 길이만큼의 뿌리가 안정적으로 여러 가닥 나온 것을 확인하고 삽목을 결정했다. 미리 골라둔 화분에 뿌리를 조심스럽게 펴서 삽수를 올린 다음 흙을 채운다. 물을 듬뿍 주고 통풍이 잘 되는 베란다에 두고 뿌리가 튼튼히 자리잡기를 기다린다. 뿌리가 나오고, 적당하게 자라고, 흙으로 옮기고, 또 자라고, 새잎이 나오는 과정까지 끝내야 삽목이 완성된다. 그때부터는 고무나무에 붙었던 한 가지가 아니라 또 다른 고무나무인 것이다.  



  6월 중순, 좋아하는 작가님이 이웃 동네에 있는 책방에서 에세이 수업을 여신다는 공지를 인스타그램에서 봤다. 보자마자  일정도 시간도 안 살펴보고 일단 신청부터했다. 다행히 선착순 안에 들어 모임에 참석할 수 있었고, 지난 주말로 총 8회 수업 중 3회가 끝났다. 나를 제외한 멤버들은 모두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 정도. 세대차가 제법 느껴지지만 개성넘치는 각자의 글들을 읽으며 울고 웃으다보니 친밀감도 생기고 기대감도 생겼다.


  지난 회차 작가님이 내 주신 글감은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을 생각하다 시어머니가 먼저 떠올랐고,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이야기를 풀어서 글로 완성했다. 차갑고 매정했던 시어머니의 유품으로 어울리지 않는 물건을 발견하며 생전에는 몰랐던 면모를 떠올리고 추모하는 내용이었다. 오래 담아뒀던 이야기라서 열심히 썼다. 멤버들 카톡방에 올리고 브런치에도 발행하며 2주 뒤에 있을 모임을 기다렸다.


  드디어 토요일, 합평 겸 감상의 시간이 되었다. 내 글에 대한 솔직한 감상과 평을 들을 생각을 하니 떨리고 긴장되었지만 동시에 설레기도 했다. 나는 재미있게 썼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을지, 시어머니라는 이름에 감춰진 어머니의 젊은 시절에 대한 내 연민이 어떻게 전달되었을지 궁금했다. 다른 분들의 글을 나누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긴장과 기대로 떨리던 입꼬리는 이어지는 멤버들의 소감을 들으며 점점 굳어져갔다. 내 글이 대체로 멤버들의 공감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은 사나운 어머니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고 했고, 또 다른 사람은 표현들이 어색하다고 했다. 고심해서 쓴 몇몇 단어들도 이해받지 못했다. 좋았다는 말도 들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난다. 으로 인한 부분기억상실증인지도 모르겠다. 사십 중반의 작가님은 어떤 감정인지 다 이해가 된다고 하시면서 40대 이상 독자를 타켓으로 글을 쓰라고 농담으로 마무리 해주셨다.


  모임이 끝나고 바로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약간의 방황을 하다 돌아갔다. 하루종일 의기소침하고 식구들한테도 퉁명스럽게 대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알아서 나를 피해줬다. 오후에는 폭염임에도 더운 베란다에 주저앉아 아침에 못 챙겨줬던 물을 줬다. 땀을 뻘뻘 흘리며 잎 하나하나 들춰가며 물을 주는데 고무나무의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 잘라낸 가지끝에 뿌리를 낸 고무나무, 뿌리가 튼튼히 자라고 있는 고무나무. 삽목해서 베란다에 둔지 한 달이 지난 그 고무나무.



  

요렇게 초록 뿔같았던 잎이

그 고무나무가 새 잎을 내려하고 있었다.  물 속에서 나온 한 없이 여리던 뿌리가 단단하고 거친 흙속에서도 힘껏 뿌리를 잘 내렸나보다. 뾰족한 화살촉같이 말려있던 잎이 초록이 짙어지며 부풀고 있었다. 아무 방해 없는 물 속에서 편하게 자라던 뿌리가 흙을 뚫고 뻗어나가 흔들리지 않게 자신을 세우고 흙속에서 물과 양분을 빨아들이기 위해 얼마나 힘을 다했을까. 악착같이 새 뿌리를 내고 더 세게 흙을 움켜쥐면서 제 할일을 다하더니 이제 새 잎까지 펼치려한다. 저 잎이 나오면 다음 잎을, 그 다음 잎을 내면서 위로위로 더 자라나겠지. 둥글고 큰 잎을 초록으로 빛내며 커가겠지. 기특하고 신기하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뿌리는 여기저기 부딪히고 막혀도 계속 전진하며 묵묵히 자신이 할 일을 계속했다. 어두운 흙 속에서 열과 성을 다해 뻗어가는 뿌리처럼 좌절하고 실망하지 말고 계속해서 글을 쓰라고 고무나무가 내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쪼그라들었던 마음이 조금 부푸는게 느껴졌다. 숨이 들어가고 크게 내쉬어지더니 어깨가 펴졌다. 물뿌리개를 내려놓고 손을 닦았다. 글을 쓰고 싶어졌다.   


요렇게 잎이 자라서 펴지려 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살면서 잘 한 일 세 가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