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어라 Aug 04. 2023

네 식구 별거 없는 여행기

치악산 자연휴양림  황토방  하룻밤

  지난 주에 1박 2일로 휴양림에 다녀왔습니다.사실 미리미리 준비하고 예매전쟁에 뛰어드는 타입이 아니라 아무 휴가계획없이 7월을 맞이했습니다. 큰 아들 방학이 짧아 어차피 여행은 무리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휴양림에 구경하러 들어갔는데, 7월 말에 대기가 가능 한 곳이 하나 있더군요. 별 기대없이 걸어두고 잊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쯤 지났나, 운좋게 대기자 예약하라고 문자를 받았습니다! 이런 행운이!


  그리하야, 7월 말 어느 아침에 저녁으로 먹을 컵라면을 챙겨서 무작정 원주 치악산으로 떠났습니다. 산에서 물놀이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치악산이 물이 많고 계곡이 넓은 곳은 아니잖아요? 은혜갚은 까치를 찾아 폭염을 뚫고 등반 할 것도 아니고요. 그냥 휴양림 안에 있는 냇물에 발이라도 담그자하고 일찍 출발했어요. 휴양림 근처에 있는 작은 계곡은 백숙집과 유료평상이 점령하고 있어서 구경만 하고 패스했고요.


  다른 관광 아무 것도 안하고요. 하룻동안 진짜 그냥 휴양림 안에서 쉬다가 왔어요. 바베큐도 안하고 밥도 안 했어요. 저녁은 컵라면 먹고 아침은 레토르트 죽 먹으면서요. 간식과 음료수 맥주 정도 먹었네요. 오로지 계곡에서 물장구 치고 산책 하고 시원한 방에서 자고, 잘 쉬고 왔어요. 진짜 10평 방 안에 네 식구가 같이 드러누워서 서로의 무릎베고 엎치락 뒤치락 놀기도 하고,  팔베개도 하고 티비 보고 책 보고, 간식 먹으며 시시껄렁한 이야기들 나누는 것만 했는데도 즐거웠어요. 크고 시설 좋은 리조트도 아니고 쾌적한 호텔도 아니지만 오히려 좁은 공간에서 네 식구가 하루종일 함께 있는게 더 좋더라고요. 

  특히 계곡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만큼 조그만 냇물, 커다란 치악산이 내어준 손바닥 만한 물에서 발 담그고 고기 잡고 쉴 수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자연이 인간에게 겨우 요만큼만 주어도 이렇게 풍요롭고 여유로워지더군요. 진부하지만 더욱 더 자연을 소중히 아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큰 아이는 물살이 빠른 곳에 아예 주저앉아 놀고, 작은 아이는 물고기 잡는다고 집중하고, 아빠도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고, 저는 맥주 한 캔 하며 책 한 권을 다 읽고 왔어요.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가 또 함께 물장난치고 대화 나누고, 그 배경에 물 흐르는 소리와 매미소리가 가득하고, 하늘은 맑고 구름은 흐르고. 아무런 액티비티 없어도 좋을 수 있더군요.

여름엔 미스터리! 계곡에 발담그고 맥주 마시며 완독!

다음 날 오전에도 그렇게 계곡에서 놀다가 맛난 점심 먹고 느긋하게 올라왔습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고1 큰 아들이 그러더군요. '뭔가 화목한 여행'을 한 거 같다고. 아이도 저와 같은 마음이었구나 싶어서 흐뭇했습니다. 네, 행복했답니다.  

   

작가의 이전글 고무나무 뿌리가 등을 밀어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