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테리어라는 말이 있다. 식물을 뜻하는 플랜트(Plant)와 인테리어(Interior) 두 단어를 합해 만들어낸 단어로 식물로 환경을 꾸미는 인테리어 방식, 스타일을 말한다. 식물이 공간을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곳으로 바꿔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내 편의를 위해 사들였다 죽으면 교체하는 부품처럼 이렇게 기능으로만 존재하는 도구화되는 단어가 아무렇지 않게 쓰이는 현실이 불편해서 되도록 ‘플렌테리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적재적소에서 적당하게 환경과 공기 정화에 기여하며 잘 살아가고 있는 초록이들도 있지만, 문구점 앞 병아리보다 더 쉽게 사들였다 더 쉽게 죽어나가는 것이 현실이다.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동물에 비해 가만히 있으며 조용히 성장하는 식물은 잊혀 지기 쉬운 존재다.
이사하며 남편은 거실에 어울릴 대형화분을 하나 장만하고 싶어 했다. 나 역시 거실에서도 키울 수 있는 아이, 언제나 바라 볼 수 있는 아이가 그리웠던 터라 같이 몇 군데 화원을 다녀봤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도 가격이고 둘의 취향이 차이가 커서 손쉽게 결정을 못하고 있었다. 고르기 힘들어진 남편은 ‘잡지 사진을 보고 나와 있는 화분이랑 같은 거를 사자’고 했다.
“나는 거실을 멋지게 꾸며줄 수 있는 인테리어 용품으로서의 식물을 사고 싶은 게 아니야. 거실에서 바라보며 내가 행복하고, 식물도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는 반려식물을 들이고 싶은 거야. 잡지를 보고 찾고 싶지 않아.”
결국 우리 부부는 해가 바뀌도록 우리 집 거실에서 지낼 식물을 구하지 못했지만 남편과 내가 원하는 수형의 가지, 좋아하는 무늬의 잎을 찾을 때까지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화원에서 추천하는 일반적인 식물 말고 첫 눈에 반하듯이 끌리는 아이를 데려오고 싶은 욕심 때문이다. 언젠가 우리에게 딱 맞는 아이를 만나리라 믿고 기다린다. 나만큼 커다란 초록 반려식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