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플랜티맘이다.

플랜티맘, 플랜태디를 위하여

by 피어라

작년 여름 지금 살고 있는 신도시에 입주했다. 이사 후 아파트 주변에 하나씩 상가가 차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어제는 여기에 돈가스 가게가 생기고, 오늘은 저기 떡볶이집이 생기는 식으로 날마다 새로운 가게가 들어섰다. 그렇게 새로 개업하는 가게들이 늘어날수록 문을 연 매장 안팎으로 개업축하화분들도 넘쳐났다. 주로 고무나무, 율마, 스투키, 금전수, 녹보수, 해피트리 등의 큰 화분들이었고, 각종 난 화분들이나 테이블 위를 장식할 작은 소품용 화분들도 있었다.




그렇게 곳곳에 ‘돈 세다 잠드소서’라는 리본을 달고 서있는 개업축하화분들은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겨서인지 싱그럽고 빛이 났다. 갓 개업한 가게에 손님이 몰리는 것처럼, 식물도 ‘오픈빨’이 있다. 헤어샵에서 머리하고 나온 날이 제일 예쁜 것처럼, 식물도 화원에서 온 날이 가장 예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응원메세지를 잔뜩 단 저 식물들은 많은 수가 폐가처럼 버려지게 될 것이다. 필요한 광량과 상관없이 애매한 위치에서 말라죽어가거나 시들어 가는 아이들, 노지 월동이 안 되는 아이인데 밖에서 냉해를 입어 얼어 죽어가는 아이들, 실내에서 과습으로 물러 죽어가는 아이들. 치렁치렁한 개업 축하리본을 달고 있는 아이들 중 제대로 오래 자라 초록빛을 뽐내는 아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그렇게 죽은 식물이 미라처럼 꽂혀있는 빈 화분들은 결국 가게 바깥으로 옮겨진다. 가게 앞에 방치되어 버린 대형화분들은 아무나 가져가라는 쪽지와 함께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풍기다 어느 날 사라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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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길가에 재떨이가 되어버린 죽은 고무나무 -



도시에 버려진 길고양이를 돌보는 사람들을 캣맘·캣대디라고 부른다. 입양해 키우지는 않지만 최소한의 식사와 물을 제공해주는 캣맘, 캣대디처럼 유기식물을 돌보는 사람들이 있다. 유기동물 입양하듯이 버려진 식물들을 데려다 돌보는 사람들. 굳이 이름 붙인다면 플렌티맘 플렌테디 정도라도 부를 수 있지 않을까?(내가 만든 말이지만 어감이 제법 괜찮다.) 이렇게 주운 아이들도 잘 보살피면 번식을 하고 꽃을 피운다.


우리 집에서 고무나무 다음으로 고참인 초록이는 아파트 화단에 버려져 있던 아이를 주워 키운 아이다. 이름도 몰라 ‘초록무명거사’라고 부르고 있다. 어떤 환경에서도 잘 자라 무성하게 번식을 하고 한겨울 한여름 어떤 날씨에도 잘 자란다. 심지어 과습도 건조도 잘 버텨내는 무적이다. 사시사철 새잎을 잘 뻗어내며 풍성히 자라서 포기를 나눠 친정부모님께도 나눠드렸다. 지금도 베란다 창가자리, 가장 춥고 외진 곳에서 가장 잘 자라고 있다. 겨울철 부서진 길거리 화단에서 쏟아져 내린 잘린 가지를 들고 와 지금껏 키우고 있는 제라늄도 있다. 봄철에 길거리 화단 정비용으로 심겨져있다 겨울이 되며 동사하고 결국 뿌리 뽑혀 쓰레기로 버려지는 식물들. 실내에 들이면 잘 살아날 생명인데 싶어 주워다 빈 화분에 심었다. 목질화가 많이 진행되어 삽목한 가지만 살고 모체는 떠났지만 지금껏 빨간 꽃을 피우며 일 년 내내 나를 즐겁게 해주고 있다.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다 키울 때마다 생명과 인연에 대해 생각해본다. 도시의 뒤편에 버려진 식물들, 보이지 않는 화단에 방치된 식물들을 돌보는 일은 보잘 것 없거나, 사소한 일이겠지만, 그렇게 하찮은 식물이 피워내는 생명의 아름다움과 절절함을 나는 알고 있다. 눈감으면 그만일 녹색의 번짐이지만, 그래서 더 애틋하게 보살피게 된다. 그럴 때 나는 스스로를 플랜티맘이라고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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