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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Aug 24. 2023

부끄러움이라는 이름의 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잔인하다. 타고나길 이기적인 인간이 얼마나 본성을 거스르며 처절하게 노력해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불가능한 가르침을 인간에게 주다니, 예수는 정녕 신(神)이다. 예수의 말에 비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우리 옛 속담은 쉽고 예리하다. 얼굴도 모르는 생판 남이 아닌 가까이 알고 지내는 사촌이 땅을 사서 부럽고 약이 올라 배까지 아프다. 솔직해서 귀엽기까지 한 고백이다.     



      이십년 전 쯤, 나는 유학중인 남편과 함께 외국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때 자그마한 한국인 교회 공동체에서 함께 활동 하며 친하게 지내던 한국인 유학생들이 몇 있었다. 외롭고 힘든 타국에서 서로 돕고 먹거리를 나누며 가까이 지냈다. 한국에서 갓 대학을 졸업하고 온 K는 유학초기라 아직 외국 생활이 낯설고 행정적인 도움도 많이 필요했다. 유학생 커뮤니티를 통해 당시 내가 다니던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나와 나이 차이는 꽤 나지만 금방 가까워졌다. 관계가 더욱 두터워질 무렵, 모임에서 K가 좋은 일이 생겼다며 얘기를 꺼냈다. 어찌어찌하여 자신이 모 장학재단 장학생으로 뽑히고 진학에도 유리한 자격을 얻게 되었다는 거다. 남편도 지원했다 떨어진 적 있는, 이름만 대면 다들 아는 유명한 장학재단이었다. 유학 오자마자 선배들도 타기 쉽지 않은 장학금을 탔다고 모두들 부러워하며 축하해주었다.


 좋은 분위기에서 훈훈하게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습하고 뜨거운 몸을 식히러 욕실에 들어가 샤워기부터 틀었다. 쏟아지는 차가운 물줄기에 머리를 들이미는 순간, 난데없이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성경구절이 내 머릿속으로 세차게 떨어졌다. K가 장학생이 되었다고 웃으며 말했을 때 입으로는 잘 됐다며 축하를 전했지만, 사실은 ‘K가 떨어졌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냄비 속에서 뭉근히 끓는 팥죽처럼, 지저분한 진창에 고여 있는 흙탕물처럼,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속에서는 시샘과 질투가 차올랐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떤 감정이 몰아치며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한참을 샤워기 밑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서 있었다. 그건, 부끄러움이었다.


  이후로도 부끄러움은 때때로 나를 찾아왔다. 조카가 우수한 성적으로 특목고에 진학하고 외국 명문대로 유학을 떠났을 때도, 돈 잘 버는 남편을 둔 친구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경제력을 드러낼 때도, 나보다 훨씬 낮은 연차의 직장 후배가 비싸고 좋은 집을 장만했을 때도, 나는 내 부끄러움을 목격했다. 겉으로는 축하하지만 속으로는 약이 올랐다. 내 안에 뱀 한 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 같았다. 표리부동했던 자신에 대한 연민과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이라고 신에게 항변하고픈 욕구가 뒤엉킨 모습을 한 뱀. 어쩌다 그 뱀과 마주한 날이면 내 머리 위로 쏟아지던 차가운 물줄기와 머릿속으로 떨어지던 성경 구절이 떠올라 가벼운 몸살을 앓았다.     


      질투와 시샘으로 괴로워하고, 그런 자신이 부끄러워 또 힘들어하며 30대를 보내고 40대가 되었다. 더는 부끄러움이라는 뱀이 나를 갉아먹도록 둘 수 없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 이 감정들을 해결해야만 했다.  질투는 연약하고 불안정하며 변질되기 쉬운 감정이다. 잘 길들이면 힘이 될 수 있지만 대부분은 안에서부터 부패해 버린다. 시인 기형도처럼 치열한 자기 성찰로 질투가 힘이 되도록 만들 능력은 내게 없었다. 그랬다면 애초에 부끄러움이라는 뱀을 키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질투가 아니라 부러움을 선택하기로 했다. 뱀을 없애는 대신 재워버리기로 한 거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겐 질투보다 부러움이 더 수월했다. 부럽지 않은 척 어설픈 자존심을 내세우지 말고 그냥 부럽다고 인정해 버렸다. 세상의 많은 것들을 부러워하기로 마음먹자, 부끄러움도 달리 보였다. 주변에 솔직하게 부러움을 표현했더니 부끄러움의 자리가 당당함으로 채워졌다. 지금을 솔직히 받아들이자 다음을 위해 노력하는 힘도 생겼다. 부러우면 지는 게 아니라 이기는 거였다. 


 여전히 타인을 완벽히 긍정하지는 못하지만, 물론 평생 도달하기 힘들겠지만, 그래도 이젠 예전처럼 뱀에게 먹히지는 않는다. 불쑥불쑥 머리를 쳐드는 뱀을 달래서 다시 재울 수 있다. 오래도록 부끄러움에 시달린 후에 부러움을 찾았다. 제법 평온하다.         



           

*마태복음 22장 39절 : 둘째도 그와 같으니 ㄹ)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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