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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Aug 22. 2023

츤데레 버스기사님

그 분의 MBTI가 궁금합니다. 

오늘도 퇴근하며 버스에 탔습니다. 교통카드를 찍는데 익히 아는 얼굴의 기사님이 허스키한 목소리로 굵직하게 인사를 건네십니다. 얼굴만 보면 호랑이가 연상되는 분이신데, 의외로 타고 내리는 모든 승객에게 인사를 하시는 분입니다. 이 분 버스를 탄 지 벌써 5년이 넘어가는데 매번 그렇게 인사를 건네세요. 참 쉽지 않을텐데, 지치기도 하고 힘드실 수도 있을텐데, 늘 그러십니다.


제가 기사님을 만나는건, 아마 일주일에 한 두번 정도지 싶어요. 제 출퇴근 시간이 매일 일정한 것도 아니고, 기사님 운행이 일정한 것도 아니니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만나면 많은 걸겁니다. 어쨌거나 기사님은 저를 모르시겠지만 저는 기사님을 꽤나 잘 알고 있습니다. 우선, 환갑이 지나셨어요. 고등학생 손자가 있고, 자녀는 딸도 있고 아들도 있지요. 한 번도 대화 해 본적이 없지만 압니다. 버스 안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다른 승객분들이랑 얘기 나누시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지요. 그리고, 성품이 매우 불같으십니다. 처음에는 항상 인사로 맞이하시는 모습만 봐서 저는 살갑고 다정한 기사님이신가보다 생각했어요. 천만에요. 역시 사람은 한가지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출근하며 있었던 일이에요. 보통 아침에 등교하는 학생들이 많이 몰리면 다른 기사님들은 뒷문을 열고 뒤로 타라고 안내를 해주십니다. 학생들이 타서 뒤로 이동을 안하면 버스 뒤쪽은 여유가 있는데 앞에만 꽉 들어차서 다른 승객들이 타기 힘들거든요. 여기는 시골이라서 도시랑 좀 분위기가 달라요. 학생들도 알아서 뒷문을 열어달라고 기사님께 요구하기도 합니다. 기사님 입장에서도 시간도 절약하고 뒤쪽도 채울 겸 융통성을 발휘하시죠.  


그날도 늘 그렇듯 버스에 오르는 승객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건네시는 모습을 보며 자리에 앉아서 핸들폰을 보고 있는데 느닷없이 천둥이 치더라고요. 기사님이 엄청 큰 목소리로 고함을 치시는거에요. 학생들 몇명이 내리는 승객들 다 내리고 뒷문으로 승차를 했는데, 그 학생들을 향해 엄청 역정을 내시는겁니다.


"학생! 뒷문으로 타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 뒤로 타면 안된다고! 뒤로타다 학생이 다지면 그게 다 내탓이라니까! 뒤로 타지 말라고!" 


진짜 부모의 원수를 만나도 그렇게 소리치지는 않을 거에요. 학생들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꾸짖음 당해 본적이 있을가 싶었구요. 더 놀라운 건 그렇게 한 정거장을 다 갈 동안 고함치고 화를 내더니 다음 정류장에서는 다시 낮은 평소와 같은 톤으로 앞문으로 올라오는 승객을 향해,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하면서 인삿말을 건네시는 모습이었어요. 음, 프로다. 프로야.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지만 또 한 편으로는 배신감도 들었어요. 그렇게 화를 냈으면 차라리 입을 다물지. 마음은 화난 상태면서 입으로만 건네는 기계적인 인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정말 인상깊었던 순간이라 3년 쯤 된 일인데도 잊혀지지가 않네요. 그때 등교하던 고등학생들은 얼마나 민망했을까요. 



그 기사님을 오늘 퇴근길에 또 만났습니다. 언제나처럼 굵직하면서 어딘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저도 물론 목례를 하며 인사드리고요. 다행히 버스안에 자리가 많아서 뒤쪽으로 가서 앉았습니다. 제 뒤로도 다른 승객들이 많이 타서 다음 정류장에 올라탄 손님들은 서서 가야했습니다. 아마도 하원하는 아이를 안고 엄마가 올라왔나봐요. 저는 핸드폰을 보느라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기사아저씨의 굵은 목소리가 또 버스 안을 가득 채웁니다.


"노란 의자에 앉은 사람들, 좀 일어나세요. 여기 애기 엄마 탑니다."


기사님 말을 들어서일지, 서너살짜리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를 봐서인지, 앞쪽에서 여학생이 벌떡 일어나 자리 양보를 했습니다. 아이 엄마가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냈지만, 그보다 먼저 울리는 기사님의 감사 인사에 소리가 묻히더군요. 


"천천히 앉으세요. 학생 고마워요. 출발합니다."


버스는 다시 노선을 따라 달리고, 기사님은 정류장마다 '어서오세요'.'안녕히 가세요'를 반복하셨습니다. 벨을 누르고 집앞 정류장에서 내리면서 저도 기사님을 향해 웃으면서 인사드렸어요. 아마 기사님처럼 큰 목소리가 아니라서 기사님께 들리지는 않았을겁니다. 사실 그 분도 대화를 바라고 하시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인삿말은 친절하지만 대하는 태도는 전혀 친절하지 않은 00버스 기사님. 버스에 탈 때마다 고민합니다. 아아, 당신은 도대체 어떤 분이십니까..........역시 사람은 쉽게 알 수 없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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