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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Aug 13. 2023

어쨋든 심부름 값만 두둑히 주세요

심부름, 남의 힘을 부린다는 뜻이란다. 밥심처럼 힘이 심으로 바뀐 형태라고 한다.(출처:네이버 어학사전)   

   

내가 어릴 때는 자주 어른들 심부름을 했었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콩나물, 두부 따위를 사오거나, 아무 제약 없이 술이나 담배도 사왔고,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서 물건을 전달하거나 간단한 은행 업무를 보기도 했다. 대부분의 심부름이 무임금 노동착취에 가까웠지만 명절에는 달랐다. 방안에 모여 술과 함께 고스톱 치시는 친척어른들 담배심부름을 하고 오면 심부름 값 이라며 잔돈을 받기도 했는데, 이게 세뱃돈 보다 더 짭짤했다. 집에서는 엄마가 '누가 심부름 갈래?'하고 부르면 눈치봤지만 이 날은 서로 자원하느라 바빴다.


심부름은 아니지만 5학년 쯤 부터 가끔 엄마가 설거지를 시키셨다. 많은 것도 아니고 애들끼리 먹고 난 그릇 몇 개와 수저 정도였을 텐데도 정말 하기 싫었다. 억지로 대충 하다가 세 살 밑의 여동생한테 물었다. "백 원 줄께, 네가 설거지 할래?"      


그때부터 동생은 받침대까지 가져다 놓고 야무지게 내 대신 설거지를 하고 백 원을 받아갔다. 위대한 자본의 힘! 그러다 동생이 한 살 더 먹고 나서는 백 원은 코웃음 치고 이백 원 되면 할까 말까 하더니 삼백 원을 줘야 겨우 한 번 했다. 나중에는 오백 원을 외쳐도 안 했다. 게다가 나보고 직접 하라고 말하고는 부엌쪽으로 오지도 않았다. 분명 동생은 이때부터 사업머리가 있었던 것 같다. 천 원을 불렀다면 동생은 흔쾌히 거래에 응했겠지만 내겐 그런 거금도, 배포도 없었다. 우거지상을 하고 내게 주어진 노동을 감내할 밖에. 자본의 위력에 대해 일찌감치 몸으로 깨우쳤으면서도 자본을 모으기 위한 노력을 안 한걸 보면 애초에 내게 돈 모을 재능은 없는 게다.      


심부름하니 좋아하던 방송이 생각난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인기였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미취학 어린아이들의 첫 심부름을 쫒아가는 방송이다. <나의 첫 심부름>(はじめてのおつかい)이라는 제목인데 우리나라 넷플릭스에도 공개되었다. 어린 아이들이 주어진 미션대로 심부름을 하며 고분분투하는 귀여운 모습이 방송의 핵심인데, 난관을 헤치고 심부름을 완수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들이 귀엽고 기특해서 두 손을 잡고 '어머어머' 외치며 응원하게 된다.      


예를 들자면 네 살 아이(만나이)가 병원에 있는 엄마를 만나러 가기 위해 혼자 버스를 타고 시내를 간다거나, 세 살 아이가 유치원에 있는 형에게 잊고 간 물통을 전해주러 다녀온다는 설정이다. 일본에서 91년부터 만들어진 방송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라면 아동학대와 안전 문제로 절대 만들어지지 않을 컨셉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엄마들은 절대로 미취학 아이들을 혼자 내보내지 않는다. 교통상황, 성범죄의 우려 등등 위험요소도 많고 어린 아이를 혼자 두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 방송이야 보호자 동의 받고 제작진 보호 하에 촬영이 진행되기는 하지만 일본의 웬만한 방송포맷은 다 따라하는 우리나라 PD들도 이 방송은 시도하지를 않는걸 보면 정서상 반감이 더 클걸 알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TV조선에서 유사한 프로를 만들었으나 별 반응 없이 종료되었다)      


엿날 일이긴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일곱 살 무렵(만으로는 5세)부터 심부름을 시켰다. 십여 년 전이기도 하고, 남자아이라서 조금 덜 경각심을 가졌던 것 같다. 아마 독립심, 자기주도성, 자율성, 성취감 운운하며 초등학교 가기 전에 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일부러 시켰을 거다. 그때는 우리 아이가 이런 것도 할 줄 안다고 나름 자부심도 가졌다. 아이가 고등학생이 된 후에 미취학 시절의 내 육아를 돌이켜 보면 굳이,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일들이 몇몇 가지 있는데, 이른 심부름도 그 중 하나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키워줄 수 있는 성품이나 덕목들을 특정 행위를 통해서 기르겠다고 용쓰는 일. 의미가 없다고 폄하할 것까진 없지만 잘했다고 뿌듯해 하기도 좀 부끄럽다.      


엊그제 작은 아들과 함께 침대에 누워서 뒹굴고 있었다. 핸드폰을 하던 아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냉장고로 뛰어가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꺼내왔다. "아들, 엄마도 하나 갖다 줘.", "아이 귀찮은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 얼른 내 것도 하나 가지고 온다. 나 같으면 엄마가 가져오라고 말하고 누워서 절대로 안 일어났을 텐데. 착하다 열두 살 소년이여. 아직 권위에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커서, 아직 부모의 칭찬이 보상이 되어서 이런 소소한 심부름을 해준다. 게다가 딱히 심부름 값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받고 안 한다는 기본자세를 엿볼 수있지만 혹시 자기를 귀찮게 하는 엄마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자신은 편하게 놀겠다는 나름의 계산이 아닐까? 내 생각에는 이게 정답일 것 같다.



* 대문 이미지는 넷플릭스 홈페이지에서 캡쳐했습니다.이미지는 넷플릭스 홈페이지에서 캡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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