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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Feb 09. 2021

와이파이잎이 돋아날 때(#살아있다)

토분에 담긴 산세베리아에게 물을 주며(스포있음)

산세베리아에게 물을 주는 유빈

주인공 오준우(유아인)은 집안에 혼자 남아 게임을 하다가 세상이 좀비로 변한 것을 알게 된다. 아파트 안에 고립된 채 혼자 살아남았던 준우가 버티던 끝에 생을 마감하려던 순간, 건너편에 또다른 생존자 김유빈(박신혜)가 있음을 알게 되고, 이후 두 사람은 함께 살아남으려한다. 

영화 '살아있다'는 시작하자마자 빠른 전개로 좀비로 변한 상황에서 혼자 남은 인간이 나온다. 어째서 좀비가 되었는지, 무슨 이유로 사람들이 좀비가 되었는지는 의미가 없다. 이웃 모두 좀비로 변한 상황에서 혼자 남은 내가 어떻게 변하고 살아남는지를 보여준다.





살아있다에 나오는 좀비들은 이전 장르의 좀비와 달리 인간이었을때의 습관과 지능이 남아 문을 열기도 하고 직업으로 익힌 기능이 몸에 남아 그대로 행동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고 하고 집집마다 들어가서 사람을 잡아먹기도 한다. 심지어 소방관이었던 좀비는 줄을 잡고 아파트 외벽을 올라가기도 했다. 이렇게 공포스런 좀비들의 검붉은 움직임들 가운데 움직이지 않고 선명한 초록빛을 빛내며 대비되는 존재들이 있다. 식물이다.




준우네 집 반대편 동에 혼자 살아남은 유빈은 자신의 집에 온갖 트랩을 설치하고 등산 캠핑용품들로 자신을 무장한 채 지내지만, 부족한 물을 자신의 반려식물에게 나눠준다. 자그만 토분에 담긴 산세베리아. 비가 오면 베란다에 화분걸이에 그릇들을 내놓고 마실 물을 받으면서 그 자리에 화분을 내어놓기도 한다. 자신이 마실 물을 챙기기도 부족할텐데도 말이다. 유빈은 생존을 위해 망원경으로 아파트들을 훑다 좀비가 나타나지 않은 안전한 층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좀비들을 뚫고 건너편으로 옮겨갈 결심을 한다. 집을 나서기 전, 물병에 남은 물을 산세베리아에게 다 부어주고 떠나는 유빈. 그 곳에 남은 산세베리아는 살아서 오래오래 잎을 틔울 수 있을까. 


좀비들의 습격을 피해 무사히 안전한 집으로 찾아든 준우와 유빈을 맞이한건, 가득한 음식물과 친절한 생존자 어른, 그리고 온통 초록초록한 식물들이었다. 거실을 꽉채운 식물들. 작은 다육이부터 큰 여인초까지 거실에는 하늘거리는 커튼과 햇빛 사이로 싱그렇게 초록을 발하는 식물들이 있었다. 살아남은 사람이라도 되는 듯이. 

언제나 녹색 식물은 생명의 시작을 암시한다. 영화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에서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이 가고자하는 곳도 식물이 살아있는 그린랜드이고, 월 E 에서도 지구가 살아나는 증표로 보여주는 것이 식물이었다. 어디 영화 뿐일까. 홍수로 세계가 멸망한 뒤 노아의 방주에서 날려보낸 비둘기가 물고온 감람나무 새 잎사귀로 신의 징벌이 끝나고 생명이 돌아왔음을 알려준다. '살아있다' 에서도 생명과 평화, 안전은 식물을 통해 보여진다.




영화 마지막 준우와 유빈이 옥상에서 구출된 후 SNS로 구조신호를 보낸 사람들이 도시 곳곳에 썸네일로 떠오르는 장면. 높은 건물 꼭대기에 와이파이 표시처럼 하나씩 피어나는 모습은 나무에 새 잎이 돋아나고, 빈 가지에 꽃이 피어나는 모습과 꼭 닮았다. 창 밖으로 물드는 단풍이 더 소중히 눈에 들어오게 되는 까닭이다. 좀비보다 더 무서운 코로나 세상이더라도, 아직은 살만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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