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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Feb 16. 2024

찹쌀떡과 메밀묵

얼마 전이었다. 늦은 밤이지만 어느 집에서는 자지 않고 야식과 맥주를 곁들이기도 할 법한 시간, 아직은 새벽이 아닌 시간, 밤 11시 쯤에 남편과 함께 밤마실을 나갔다. 속이 더부룩하고 답답해서 조금 걸어볼까 싶어 나갔지만 게으르고 귀찮아서 단지 한 바퀴만 돌고 다시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밤중인데 또렷하게 메아리치며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찹쌀 떠억~"


잘 못 들었나 싶어 귀를 기울였다. 먼 곳인지 작게 '찹쌀떠억, 메밀 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길게 꼬리를 늘리며 사라지는 소리, 분명 찹쌀떡 장수가 외치는 소리였다. 


내가 어릴때는 세밑에 집집마다 문 앞에 복조리를 걸어두었고 밤에는 골목 골목 다니며 찹살떡 장수 아저씨가 외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큰 애 어릴때도 밤에 나가서 사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멈춰서서 소리가 들리기를 기다렸다. 굵직한 목소리로 찹쌀떠억, 하고 소리를 높인 다음 낮게 메미일 무욱~하고 누른다. 분명 예전에 그 소리다. 높낮이도 똑같다. 정겹고 반가워서 한참을 듣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왜 찹쌀떡과 메밀묵을 먹었는지, 왜 돌아다니며 파는 사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눈에 보이면 뛰어가고 싶은데, 도시의 아파트에서는 소리가 여기저기 반향되어 울리는 바람에 어디서 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동하는 트럭인지 방향도 짐작 없었다. 


하지만 밤바람을 타고 울리는 찹살떡 장수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먼 옛날의 시간이 한 겹씩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이런 마음을 노스텔지어라고 하는 걸까,  뜬금없이 아련해져서 남편과 손을 잡은 채 한참을 서있었다. 달이 조금씩 기울고,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이제 들어가자며 남편이 걸음을 옮겼다. 


집에 올라가니 아이들은 핸드폰을 하며 뒹굴대고 있었다. 분명 어둔 밤에 울리던 찹쌀떡소리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엄마가 왜 이상한 표정을 하고 들어왔는지도 모를테고. 세월은 흐르고, 나는 늙고, 아이들은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자꾸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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