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어라 Mar 09. 2024

기린 아들 핥아주기

이제 막 중 1이 된 작은 아들이 교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면 예전에 보았던 동물 다큐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갓 태어난 새끼 기린이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서려는 장면. 영상 속의 기린은 가느다랗고 얇은 다리로 비틀대면서 일어나 겅중겅중 걸어다녔다. 여드름은 커녕 아직도 솜털이 보송한 뺨을 하고 마른 몸에 헐렁하게 큰 교복을 입고 서 있는 모습이 어딘가 그 기린과 닮았다. 



중학생이 되었지만 막내라서 그런가 아직 아이처럼 엄마한테 치댈때가 있다. 잠이 잘 안 오는 날은 엄마에게 등을 만져달라던가, 긴장될때 자기가 먼저 안아달라고 한다던가.  입학하고 이틀이 지난 밤도 그랬다. 초등시절보다 등교 준비도 많고 수업도 길고 피곤한데 방학내내 늦게까지 안 자고 놀던 습관이 남아서 밤에 잠을 잘 못잤다. 그 날도 자신의 이층침대에 누워 버둥대다가 도저히 잠이 안 오자 안방으로 터덜터덜 들어왔다. 불퉁한 표정으로 내 침대 옆에 등을 돌리고 누워서 조용히 한 마디했다.


"하, 중학생이 됐는데 엄마랑 같이 자다니."


가끔이지만 방학때도 내 옆에서 같이 핸드폰 보다가 잠든 적 있으면서 하룻사이에 중학생이 되었다고 창피해한다. 아들이 민망해하는 모습까지도 귀여워서 엄마는 이불로 아들을 둘둘 말고선 뒤에서 힘껏 껴안았다. 할 수 있을 때 실컷 해둬야하는 것 중에는 아들 놀리기도 포함된다.


"아유 우리 아가. 중학생인데도 아직도 아가네?"


"아, 엄마, 나 엄마가 생각하는 것 만큼 순진하지 않아. 아가아니야."


짜증인듯 투정인듯 툴툴대며 말하는 모습마저도 웃기도 귀엽다.


"그래? 안 순진해?"


"나 친구들 만나면 욕도 한다고."


어쩌다 이런 대화를 하는 모자 사이가 됐을까? 열 네 살이 된 남자녀석이 그럼 욕도 하고 엄한 영상도 보고 다 했겠지. 엄마가 모를까봐서. 이쁘다 이쁘다 한다고 엄마가 자기를 무슨 온실 속의 화초로 보는 줄 알았나보다. 그렇게 여기는 것도 웃기지만 이렇게 말하는 아이 마음이 다정해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럴 때 무언가 다정하게 말해주면 좋을텐데,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나도 하는데?'였다. 아들 둘 키우는 엄마가 아들한테 욕도 가끔 하고 그럴 수 있지. 


"엄마 욕쟁이잖아. 괜찮아, 너도 친구들하고 있을 때는 욕해도 돼." 


그러고는 손을 앞으로 뻗어 아이의 뱃살과 겨드랑이를 간지렀다. 깔깔대고 웃던 녀석이 이런 엄마와의 스킨쉽도 부끄러웠는지 웃다말고 한 마디 한다.


 "아, 자존심 상해."


엄마 옆에 누웠지만 결국 또 둘이 수다 떨다 늦게 잠들었다. 우리 기린 아들, 어엿하게 자라서 높은 곳에 잎사귀를 뜯어 먹도록 열심히, 열심히 핥아주련다. 아주아주 다정하게.   


이전 01화 다정하고 다정하고 다정한 브런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