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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Mar 20. 2024

짧은 스케치

바쁜 3월이지만 꾸준히 쓰며 살고 싶다. 브런치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쓰는 행위를 잊었을 것이다. 쓰지는 못해도 다른 작가님들의 글은 틈틈이 읽고 있었는데, 요새는 그것도 몰아서 하고 있다. 시간이 너무 부족하다. 4월이 되면 여유가 생기겠지. 오며가며 써둔 일기들을 올려본다.




다른 식구들은 먹지 않는 반찬이 세 가지가 있다. 우연찮게도 그 세 가지 모두 김치종류다. 파김치, 고들빼기김치, 갓김치다. 물론 셋 다 내가 만들지 못하는, 오로지 친정엄마의 손맛으로 완성되는 한정판 특제품이다.


온갖 양념과 액젓으로 맛을 낸 파김치는 뚜껑을 여는 순간부터 매운 파향과 젓갈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익으면 익어갈수록 독특한 풍미가 살아서 짜파게티를 싸서 먹으면 극락을 경험할 수 있다. 마른오징어를 숭덩숭덩 잘라 넣고 담근 고들빼기김치는 또 어떤가. 오징어단백질의 감칠맛이 어우러지면서 여느 김치에선 볼 수 없는 특유의 향과 맛이 살아있다. 거기에 갓김치가 빠질 수 없다. 쌉쌀하고 알싸한 갓의 매운맛에 중독되면 잘라서 먹지 않고 주욱 뜯어 한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게 된다. 세 김치다 밥하고 최고 궁합이지만 수육같은 고기와도 잘 어울리고 라면이나 와인과 먹어도 글로벌한 마리아주를 만들 수 있다.


아이들은 깊은 맛을 몰라서 못 먹고, 남편은 아이입맛이라 아예 손을 안 댄다. 다행이다. 나 혼자 냉장고에 넣어두고 아껴먹는 반찬인데 애석하게 최근 큰 아들이 파김치의 맛을 알아버렸다. 둘이 나눠먹게 되어 몹시, 매우, 꽤나 아쉽다.




오늘은 작은 아이 생일이다. 이 녀석을 낳고 키우느라 고생한 내가 축하받고 싶은 마음이지만, 효도를 강요할 수는 없고, 부모의 의무는 다 해야겠고. 퇴근하며 케이크와 아이가 좋아하는 먹을거리를 사러 갈 생각이다. 사춘기라고 엄마 싫어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녀석에게 생일축하를 해주려니 억울한 마음도 없잖아 있지만 어쩌겠는가. 사랑은 내리사랑이요,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지는거라는데, 엄마가 항상 을일 수 밖에. 갑인 아들을 위해 부지런히 퇴근해야지. 사랑한다 아들아, 생일 축하해. 크흡-




매년 이맘 때면 꼭 프리지아를 사서 교실에 꽂아둔다. 프리지아는 다양한 꽃말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당신의 시작을 응원합니다'이다.  아이들에게 꽃말을 전하며 새학년 잘 시작하자고 말을 건네면 아이들 얼굴이 부드러워진다. 꽃이 피어갈수록 교실에 향기가 나는 것도, 아이들끼리 맡으며 즐거워하는 것을 보는 것도 기쁘다. 오늘 아침 출근하자마자 작은 병에 물을 담고 손질한 프리지어를 담갔다. 우리 교실 앞문 쪽에 하나, 연구실에 하나, 옆 반에도 하나 나눠드렸다. 노란 꽃망울을 볼때마다 자꾸 웃음이 번진다.




학부모 케어가 안되는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다. 부모의 손길이 조금만 더 세심하다면 아이의 학교생활이 훨씬 편안하고 즐거울텐데. 혼자서 고분분투하는 아이를 도와주고 싶어도 한계가 있다. 가정상황을 전부다 알지는 못하지만 그 조금의 차이가 나중에는 커다란 차이로 아이에게 남을까 마음이 쓰인다. 정작 내 아이는 잘 챙기지 못해 놓치는 것이 많으면서 말이다. 내 아이를 보면서는 초등시절의 작은 차이는 커가면서 메꿔지는 것이라고, 지금 잘 못해줘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도닥이면서 학급 아이에게는 안달복달하는 이 이율배반적인 마음이 스스로 안쓰럽고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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