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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Apr 16. 2024

차마 제목을 적을 수 없는 마음을 너희에게 전한다

얘들아, 혹시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니? 뉴스를 보거나 들은 친구들도 있을 것 같은데. 그래 맞아. 오늘은, 세월호 10주기란다. 그래서 선생님이 어떤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려해. 그냥, 선생님의 십년 전 기억 하나 말이야.


십년 전 그날, 그때도 선생님은 너희같은 6학년을 가르치고 있었어. 막 속리산으로 2박3일의 수학여행을 다녀왔었단다. 평상시처럼 아침에 수업을 하고 있는데, 인터넷으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학생들을 태운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뉴스가 올라오기 시작했어. 안타까운 소식에 쉬는시간마다 복도에 나와 옆 반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지. 처음에는 그저 사고에 대한 걱정과 놀라움 정도였어. 점심시간에는 전원구조됐다네요! 하며 안도하기도 했었어.


하지만 구조뉴스가 오보로 밝혀지고 점차 가라앉아가는 배와 구조되지 못한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면서 걱정과 불안, 안타까움과 슬픔이 뒤섞여 수업을 진행할 수가 없었어. 결국 아이들에게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사고 소식을 전했어. 그렇게 16일이 지나고 나는 평안히 집으로 돌아갔지.


그날 저녁 계속되는 뉴스를 보면서 처음엔 울었고, 점차 경악하고 분노했어. 이게 지금 무슨일인가, 믿을 수가 없었지. 그 후 며칠간 내 마음은 느닷없이 솟구쳤다 까마득하게 곤두박질쳐야했어. 너무 슬퍼서, 너무 화나서, 너무, 기가막혀서.


그때 너희는 몇 살이었을까? 너희가 12년생이니까, 두 살 무렵인가? 상상이 안가지? 가라앉아가는 배 위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을 고등학생 언니오빠들의 모습이. 무책임하게 손놓고 있었던 어른들의 모습이. 민주주의과 국가의 역할에 대해 배우고 있는 너희들에게 말도 안되는 그때의 모습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이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여전히 규명되지 않은 진실과, 책임지지 않고 회피한 부끄러운 모습들을 말이야.


다음 날이 되었어. 1교시를 시작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세월호'라는 이름을 들려주었어. 그리고 우리 멀리서나마 무사귀환과 구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보자고 작은 촛불 그림을 함께 그렸단다. 아이들도 진심을 담아 어서빨리 모두 구조되기를, 생명을 잃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하나씩 촛불을 켰어. 그때 6학년 아이들은 내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그림을 정성껏 칠하고 아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글귀까지 적더구나. 진심이 담긴 촛불그림을 복도쪽 창가에 하나씩 기도하는 마음으로 붙였어. 아주, 아주, 간절하게.


그때 그렸던 그림이 이 촛불이란다. 

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배가 가라앉았고 304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했지. 여전히 그 아픔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도 많고,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아.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니? 이전에 학교에서나 부모님으로부터, 책이나 영상으로 알고 있는 친구들도 있을거야. 혹은 세월호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 친구도 있을거야. 사람들이 왜 여전히 슬퍼하는지, 무엇때문에 계속 분노하는지, 왜 잊지 않으면 안되는지, 무엇을 잊지 말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갈 수도 있어. 그래도 이거는 꼭 기억해줘.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선 안되고 그러기 위해 필요한 일들이 있다는 것. 


사실 그때 이후로 학교에 '안전'이라는 교과목이 생겼어. 너희들 1,2학년 때 배웠던 기억나지? 더 안전한 사회가 되기 위해 다방면의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선생님 생각에는 옳은 방향만 있던 건 아니었지. 그래서 시간은 너희들에게 알려주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선생님에게는 스스로 다짐하는 시간이기도 하단다. 선생님은 아직도 관련영상을 너희들에게 보여주지 못해. 너희들 앞에서 눈물 흘릴까봐. 여전히 힘들거든. 


선생님의 이야기가 너희들 마음에 어떻게 닿을지 모르겠구나. 오늘 나눈 이야기가 너희들에게 씨앗이 되면 좋겠다. 언젠가 너희가 어른이 되고 어느날 오늘을 떠올렸을 때, 그때는 노란 리본이 더이상 눈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선생님은 내년에도 그 다음해에도 계속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주려고 해. 조금씩 아픔대신 희망이 조금 더 자라있기를 바라면서. 차마 제목을 적지 못한 이 이야기의 끝을 나중에 나중에 너희들이 맺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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