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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Apr 09. 2024

머리에 목이버섯이 달렸다

별명이 있으신가요? 어릴때 친구들끼리 부르던 별명 말입니다. 흔히 성이 김씨면 김밥이나 김치, 오씨면 오징어, 손씨면 손오공, 이렇게 아이들은 유치한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며 놀려댔지요. 물론 확고한 캐릭터나 애정어린 별칭처럼 마음에 드는 별명이 있는가 하면 놀림거리라서 싫어하는 별명도 있습니다. 


만약 아이들이 담임선생님의 별명을 짓는다면 어떤 이름들이 나올까요? 아이들 눈에 비친 내 모습은 어떨까요? 아,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그만 열지 말아야할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혔습니다. 금요일 오후, 별명을 주제로 5분 글쓰기를 했습니다. 

"선생님의 별명을 지어주세요!"


아이들은 난데없는 주제에 살짝 당황하기도 하고, 앞에 앉은 담임의 눈치를 보면서도 술술 써내려갔습니다. 어떤 별명이 나오더라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했지만, 솔직히 아이들이 나의 좋은 점을 알아봐주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을 겁니다. 두근두근 기대하며 5분을 기다렸지요.


 그렇게 만난 25개의 별명은 참으로 아이다웠습니다. 그러니까, 제 이름자 석자를 가지고 아주 흔하디 흔한 별명을 지어줬더라고요. 심지어,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 불렸던 그 별명 고대로.......  세대가 변하고 시절이 흘렀는데도 어떻게 고 나이대 아이들은 비슷한 사고를 한답니까? 학교가 그렇게 만드는 걸까요, 나이와 호르몬의 강력한 작용인걸까요?  


아쉬운 마음을 감추고 계속 읽어나갔습니다. 얼굴이 동그래서 동글이, 곰돌이 같아서 곰돌이...끄덕끄덕 인정, 괜찮아. 돼지가 아닌게 어디야. 다행이라 생각하며 읽어나가다 '목이버섯'에서 멈췄습니다. '목이버섯? 왜?' 다음 줄에 이어지는 이유를 읽고는 정말 '푸핫'하고 소리내서 낄낄대고 웃었습니다. 아니,  어깨에 닿을 듯한 길이에 약간 웨이브진 고급스러운 헤어가, 목이버섯을 닮았다니요!  


그래요, 고백할게요. 저 사실 목이버섯입니다. 맞아요, 탕수육에, 잡채에, 짬뽕에 들어있는 그 목이버섯. 


어떤가요? 똑같죠? 아이의 통찰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부터 제 이름은 목이버섯입니다.

목이버섯 드실땐 꼭 저를 떠올려주세요. 데헷  -_-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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