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어라 Jun 19. 2024

내가 경험하지 못 한 어떤 삶을 떠올리다가

나는 세한 음의 차이를 구별하며 악기가 만들어내는 소리에 몰입하여 연주하는 사람의 황홀경을 모른다.

나는 근육이 찢어지는 아픔을 견디며 몸을 움직여 어제보다 한 걸음 더 걷는 환희를 모른다. 굳은살이 배기도록 반복해서 더 정확하고 아름다운 선을 그려내는 충만함도 모르고, 신체일부가 뭉개질 정도로 단련해서 더 높은 경지에 오르는 기쁨도 알지 못한다. 정확한 계량과 적합한 온도로 원하는 식감과 맛을 구현하거나, 섬세하게 조절하고 최적의 시간을 계산해 우려내는 차 맛을 구별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나는 어제까지 소리나지않던  단소에서 처음으로 "태"음이 날때 아이의 눈이 어떻게 동그래지는지 알고 못 풀던 수학 문제를 이해한 아이가 내는 소리를 안다. 보드라운 물복숭아같던 어린 아들 허벅지에 까슬하게 자라난 털에  따가운 촉감을 알고 계절이 바꿜때마다 짧아진 소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안다. 공들여 만든 레고가 부서져서 우는 아이의 들썩이는 어깨도, 잘못했다고 먼저 사과하는 아이의 내리깐 속눈썹도 안다. 


나는 특별한 재능이 없고, 재주가 없어서 창조적인 경험을 해본적이 별로 없다. 몰입과 고양의 순간을 알지 못하고 중독될만큼 강한 쾌락을 준다는 승리의 기쁨도 모른다. 그래서 아쉽기도 하고 동경의 마음도 늘 품고 산다. 지금껏 내 인생은 사소한 것들이 쌓여서 만들어졌다. 작고 사소하며 흔한 것들. 거기에도 꽃은 피고 열매는 열린다. 아이들의 성장과 변화를 목격하며 온 몸이 전율하는 경험을 하고, 마음을 나누며 오래오래 곱씹으며 기뻐한다. 


오늘은 수요일, 일주일의 가운데 있는 날이고 오후에 출장이 잡힌 날이다. 7시 20분 조금 넘어 출근했고, 8시 이전에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시작했다.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무수히 많은 신비들로 가득하고, 나는 내가 알고 경험했던 것들 안에서 또 열심히 하루를 쌓는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신비일지도 모르니까. 


- 호퍼 화집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