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치킨을 먹고 나면 양 손에 기름이나 양념이 잔뜩 묻어있다. 분명 엄지와 검지로치킨을 붙들고 조심스레 뜯어먹었던 것 같은데, 왜 내 열손가락 여기저기에 흔적들이 남아있는걸까? 이상하다. 하지만 두 손가락만 사용하건 열 손가락을 다 사용하건 치킨은 치킨이고, 맛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나와 함께 먹는 가족들은 꼭 눈을 흘기며 우다다다 비판의 말을 쏟아낸다. 지저분하다고. 아니 내가 내 손가락에 묻은 양념을 여기저기 묻히는것도 아니고 그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고 코를 파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걸까?
어릴 때 아빠가 사오시던 전기구이 통닭을 먹을 때부터 나는 뼈를 잘 발라먹지 못했다. 구강구조와 턱뼈의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요령껏 잘 먹지를 못해서 내가 남긴 뼈에는 항상 살점이 붙어있었다. 그러니 부모님은 아깝다고 더 발라먹으라고 잔소리하셨고, 나는 내려놓은 닭뼈를 다시 집어서 요기조기 뜯어먹어야했다. 그러다보니 내 손은 지저분해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여자애가 깨끗이 못 먹는다, 깔끔하지 못하다, 누구닮아 지저분하게 먹을까, 라는 타박과 구박을 받곤했다. 우왁스럽고 더럽게 먹어서 같이 먹는 사람 입맛을 뚝 떨어지게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남들보다 손가락에 더 많이 양념이 묻어있을 뿐인데 말이다.
지난 주 혈육정모에서 6학년 조카가 치킨을 먹는데 나처럼 손가락을 다 써가며 요리조리 뜯어먹고 있는 걸 봤다. 조카 앞에 마주 앉아 있던 내 손가락도 온통 기름과 양념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옆에 있던 친정부모님과 여동생이 동시에 "어머, 쟤 치킨 먹는거봐. 고모랑 똑같네. 아유 저 손가락 지저분한거봐!"하며 놀리기 시작했다. 바로 이어받아 내가 외쳤다. "어머, 얘 야무지게 잘 먹는거 좀 봐. 너는 큰 고모 닮아서 좋겠다. 얼마나 사랑스럽냐. 아유 이뻐. 더 먹어."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은 당연하다. 형제 중 내가 아버지의 기질을 가장 많이 물려받았다. 부모가 자신을 닮은 자식을 더 어여삐여긴다면 좋을 텐데, 우리 부모님은 그렇지 않았다. 아빠는 자신과 같은 기질의 큰딸이 불편하셨는지 자신을 닮지 않은 둘째 딸을 더 예뻐하셨고, 남편과 불화했던 엄마는 아빠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입에 달고 사셨다. 어린시절 부터 나는 늘 남편의 성격에 대한 비판과 힐난을 쏟아내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자랐다. 남편 흉은 그냥 남편 흉이 아니었다. 아빠를 쏙 빼닮은 나는 아빠를 부정하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부정하고 비난해왔다. 내 안에서 나는 형편없는 아이,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 구겨진 아이가 되었다. 그렇게 아빠와 똑닮은 딸이 성인이 되었다. 결혼 후 첫 아이를 낳고나서, 내가 건강한 자아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 자신을 긍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사랑으로 아이를 키워내는 엄마가 되려니 당연히 힘들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핏줄이 흘러 나를 닮은 내 아이를 긍정하기 위해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더해야만했다. 지금까지도.
물론 혈연이라는 애정에서 나온것이긴 했지만, 그 타박에 조카가 움츠러들지 않기를 바랬다. 그래서 고모를 닮았다는 조카에게, 최선을 다해 웃어주었다. 괜찮아, 그렇게 먹어도 돼. 다 먹고 깨끗이 씻고 뒷정리 잘 하면 되는거야. 큰고모 봐, 얼마나 예쁘냐. 너도 고모 닮아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사랑스러울거야.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될거야.
내가 누군가와 닮았다는 사실이 긍정적인 일이기를, 기쁨과 자랑이기를, 행운으로 생각하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그게 누구건간에, 어떤 점이건 간에, 그 일로 인해 자신을 갉아먹지 않도록 말이다. 그러니까 치킨을 먹을 때 열 손가락을 다 써서 먹는 건, 아주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