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마철이면 살이 오른다. 비가 오면 먹고 싶은 음식만큼 술이 너무나 당기기 때문이다. 파전과 막걸리는 기본이고, 노포에서 지글지글 구워지는 곱창이나 쫄깃한 면발과 국물이 조화로운 칼국수가 생각나고, 거기에 곁들이는 시원한 술 한 잔이 자꾸 생각난다.
분무기로 뿌려대는 것처럼 보슬거리는 비에도, 핸드폰으로 요란한 경고음과 함께 안내문자가 오는 호우에도 창문을 열수 없을 정도로 바람과 함께 들이치는 비에도, 술이 마시고 싶다. 비를 보며 집에서 가볍게 한 잔 해도 좋고, 비에 젖어가며 굳이 나가서 먹고 오는 것도 좋다. 비가 내리면 비를 맞아야 하고, 비를 맞으면 머리에 꽃도 없는데 돌아다니고 싶고, 이왕 돌아다닐거면 술집을 찾아 다니고 싶다.
일요일 늦은 저녁, 술 한잔 하기 딱 좋게 비가 내렸다. 쇼파에 기대 창밖을 보니, 비에 젖어 번들거리는 도로가 보였다. 거역할 수 없는 계시, 어제의 피곤을 얼큰한 국물과 차가운 소주로 씻어내야한다는 계시가 내렸다. 나가야한다. 남편을 꼬드겨 서둘러 집을 나섰다. 다행히 아들들 먹으라고 밥을 차려놓고 나갈 이성은 남아있었다. 펼친 우산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걷자니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목적지는 집 앞에 새로 생긴 순댓국집이다. 뻘건 다대기를 풀어서 끓인 얼큰 순댓국과 소주 한 병. 고추와 부추, 깍두기를 곁들이고 국물과 함께 차가운 소주를 넘기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걸어가는 동안 입안에 침이 고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주문을 하고 손을 닦으며 기다렸다. 늦은 시간이지만 술병이 쌓여있는 테이블들이 꽤 있었다. 나홀로 동지애를 느끼며 물도 따르고 새우젓도 꺼내 담았다. 잠시 후 뚝배기 가득 끓어넘치는 순댓국과 냉장고에서 갓 꺼낸 차가운 소주가 나왔다. 국에 부추와 들깨가루를 넣고 각자 취향대로 간을 한 후 한 숟갈 떠서 맛을 보았다. '어우, 좋다' 소리가 절로 나오고, 소주병을 따는 손길이 나도 모르게 다급해졌다. 꼴꼴꼴꼴, 소주병의 노래를 들으며 남편 잔과 내 잔에 기분좋게 한 잔씩 따랐다. 이어지는 가벼운 건배와 첫 모금. 크으, 속이 시원하다. 재빨리 국물을 떠서 삼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