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내 장점 세 가지 말해봐

by 피어라

인간은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나라고 별 수 있겠는가. 내 기분만 나빠질 수 있다는걸 알면서도 가끔은 확인받고 싶어진다. 남편에게서 다정한 답변이 안 나올걸 알면서 물어봤다. 원래 내 발등은 내가 찍는거고, 똥인지 된장인지 냄새만으로도 구분할 수 있는 것을 굳이 찍어보고 얼굴 찌푸린다.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여보, 내 장점 세 가지 말해봐."

역시나 밥을 잘 먹어, 같은 뻘소리를 몇 번하고 날카로운 원 투 펀치가 이어졌다. 다시.

"건강하지. 튼튼하고."

어, 그렇지. 나도 알아. 밥도 잘 먹고, 술도 잘 먹고. 그래. 장점 맞네. 그리고?


"애들한테 좋은 엄마지. 친구같은."

어머, 당신 진짜 그렇게 생각해? 난 애들한테 못해준게 많은 나쁜 엄마라고 항상 자책하며 사는데. 감동이다.


"동생들한테 좋은 언니고 누나지. 동생들이 찾아오는."

여기서 울 뻔했다.

그렇게 보였구나. ......동생들이 자주 와서 불편해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생각해줘서 정말 고마워 여보.


길가에 굴러다니는 개똥일줄 알았는데 된장이었다. 그것도 명인이 담가 3대째 숙성한 최고의 된장.


엉뚱한 소리 들을 각오하고있었는데, 예상외로 제대로 내 장점을 말해주어서, 게다가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남편이 찾아주어서 놀랐다. 남편에게서 멋진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내가 소중한 사람, 자랑스러운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 왠지 인정받은 기분이 들었다. 스스로가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결혼 후 20년 가까이 지나는 동안 진심으로 서로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거나 칭찬하는 말을 한 적이 몇 번이나 될까? 장점으로 애정을 표현하기보다 단점으로 서로를 찔러대는 편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런 고슴도치 부부의 날들을 지나고 이제는 둘 다 돌아와 거울앞에 섰다. 함께 늙어가는 동지, 같이 술 마시는 친구, 공동으로 자식을 책임져야하는 부모가 되었다. 20년 남짓한 세월을 지내고 서로를 사랑하게 하는 창조주의 섭리에(!!!) 감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니 엎드려 절을 받더라도 가끔 이렇게 확인해봐야겠다. 내 정신건강과 부부사이, 나아가 가족의 화목과 대한민국의 국위선양, 더불어 세계평화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게 분명하다. 다음에는 예쁜 데 세 군데라거나, 사랑하는 이유 세 가지, 뭐 이런 걸 물어봐야하나, 아주 잠깐 고민했다. 아니다, 선은 넘으라고 있는 게 아니라 지키라고 있는거다. 오케이. 여기까지만 하자.


누구냐 저 굵은 팔뚝은. 세상에. 소도 때려잡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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