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보 김기창 화백의 새그림을 바라본다. 먹을 내뿜어 기세를 간직한 날개와 들끓는 용암같이 회오리치는 내면의 붉은 태양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새는 어쩌자고 저 불을 삼켰나. 삭히고 삭혀 여의주로 만들 셈인가. 아니면 포효하며 내뱉을 셈인가.
저 불덩이는 강렬하지만 새는 불길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오히려 뜨거운 불을 품고 있음에도 새의 눈동자는 고요하다. 순하디 순한 새의 눈망울은 자기가 삼킨 태양을 어쩔 것인지 아무런 답을 주지 않는다.
뻗어나가는 양날개는 이제라도 날아오를 것 같다. 뻗어나간 깃털의 방향과 속도가 생생하다.저 날개를 휘저어, 삼킨 태양을 엔진삼아, 새는 날아오르려는 걸지도 모른다.
운보가 청각장애인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내면과 소통이라는 키워드로 이 그림을 해석하기는 어렵지 않을거다. 붉은 새이니 불새 혹은 주작이라고 볼 수도 있다.
허나 내겐 저 새가 자신의 욕망과 충동을 발산하려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다. 저 욕망덩어리를 갈무리 하면서도 하늘을 나는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는 순수함으로 보인다. 다른 새들이 열기를 두려워해 다가오지 못할까봐 조심하는 여리고 순수한 마음. 바보산수를 그렸던 천진한 화가의 영혼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