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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Nov 06. 2021

너에게 투명한 세상을 보여줄게

오늘도 열일중인 나의 안경으로부터

나는 안경이다.

두꺼운 근시용 렌즈가 동그랗고 가느다란 금속 테에 들어있고 탄성 좋게 잘 휘어지는 두 개의 다리를 지녔다. 내가 처음부터 두꺼운 렌즈였던 것은 아니다. 그녀와 만난 35년 전 이후로 그녀의 시력이 점차 나빠짐에 따라 나도 그녀 허리처럼 두꺼워졌다. 렌즈와 테도 시대와 유행에 따라 다양하게 변했지만 그건 겉모습일 뿐, 내 영혼은 늘 그녀와 함께였다. 35년 간 그녀에게 찰싹 붙어 그녀가 어디로 가든, 무엇을 하든 함께 있었다. 오만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수 없다. 그녀는 내가 없으면 안 된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녀는 제일 먼저 나를 찾는다. 나 없이 무엇도 시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을 보는 것도 버스를 타는 것도, 떨어져 있는 사람의 표정을 식별하는 것도 할 수 없다. 그녀가 나를 떼어놓을 때는 잠 잘 때를 제외하곤 핸드폰을 하거나 책을 읽을 때뿐이다. 씻을 때는 빼놓지 않느냐고? 물론 당연히 빼놓지만 깜빡하고 안경을 쓴 채로 세수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잘 때도 곧잘 안경을 쓰고 잔다. 나를 쓴 채로 잠들어 있으면 그녀 남편이 뒷정리를 해주곤 한다. 내가 보기에 그녀 남편은 부인이 아니라 딸과 사는 것 같다. 챙겨주는 것이 한 둘이 아니다. 오늘 아침에도 그랬다.

“여보, 내 안경 어디 갔지? 내 안경 못 봤어?”

“……몰라, 왜……”

“협탁 위에 없잖아. 자기가 치운 거 아냐? 아이 참 어디 갔지?”     


아니, 내가 발이 달렸나, 날개가 있나? 가긴 어딜 간다고 저런 말을 하며 나를 찾는단 말인가. 멀리서 들리는 목소리에 또 한숨이 나온다. 일어나서 안경을 써야하는데 침대 옆에 있어야 할 안경이 안 보인다. 출근해야하는데 안경이 없다니, 다급해진 그녀는 아직 자고 있는 남편을 억지로 깨웠다. 남편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거실 테이블 위에 봐봐.”하고 말했다. 남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얼른 거실로 나왔고, 테이블 위에 곱게 접혀진 나를 찾았다. 이런 식이다. 분명 어제 소파에서 텔레비전을 보다 그냥 잠이 들었고, 남편이 들어가서 자라고 하자 잠에 취한 채 대충 일어나다 나를 바닥에 흘렸으며, 그걸 보고 남편이 주워서 깨끗하게 닦아 테이블 위에 올려둔 거다. 그런 남편에게 그녀는 눈을 흘기며 말한다.

“챙겨줄거면 내 옆에 둬야지. 왜 거실에 둬, 한참 찾았잖아. 당신 때문에 지각하면 어떡해!”     

이런 적이 어디 한 번 뿐일까?



이 얘기를 할까 말까 고민했는데 말 나온 김에 해야겠다. 그녀가 대학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던 때 이야기다. 남들이 쌍꺼풀 수술을 한다, 라식수술을 한다 해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그녀가 난데없이 소프트 렌즈를 착용했던 사건이 있었다. 정확히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그 날 저녁에 모임이 있는데 늦게 일어난 그녀가 또 나를 못 찾고 있었다. 온 집안을 뒤져도 안경이 보이질 않고, 약속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답답해하던 그녀가 결국 찾기를 포기하고 그 길로 안경점에 가서 렌즈를 맞춘 것이다. 그 날 찾아도 보이지 않던 나 때문에 그녀도 답답했겠지만, 지켜보고 있던 내가 더 속이 터졌다. 다음 날, 눈이 작아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렌즈를 넣느라 고생했다며 가족에게 투덜대는 얘기를 들으면서 속으로 엄청 울었더랬다. 그때까지도 나는 집 안에서 그녀가 나를 찾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잃어버리기만 하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도 여러 번이다. 떨어트려서 깨지는 건 다행이 어릴 때뿐이었지만, 그녀가 자라면서는 머리맡에서 잠들다가 그녀의 고약한 잠버릇이 때문에 다리에 눌려 찌그러진 적도 있었고, 자고 일어난 그녀 발에 밟힌 적도 있다. 그렇게 바닥에 두고 쓸 거면 안경집은 왜 받아오는 건지 모르겠다. 쓰지도 않고 서랍 속에 얌전히 넣어두면서 새 안경 맞출 때마다 예쁜 디자인의 안경집은 꼭 챙겨온다. 돈 주고 쓰레기를 받아오는 셈이다.      



그녀가 나를 함부로 대한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내 은공을 잊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몇 년 전에 노안이 심해지면서 가까운 거리를 보는 안경과 먼 곳을 보는 안경, 두 개를 따로 맞췄다. 번갈아 가며 낄 때는 안경집에 넣어서 나를 직장에도 데리고 다니며 이전 보다 꽤 신경 써서 나를 다뤄 주었다. 그동안의 서운한 마음이 풀리기도 했었다. 그러던 중 작년에 갑자기 ‘운전을 해야 하는데 안경을 번갈아 쓰면서는 운전을 할 수가 없다’며 느닷없이 다초점 렌즈 안경을 맞추겠다고 했다. 정장 한 벌 값은 되는 고가의 안경, 선뜻 맞추기 부담스러운 가격의 안경인데 두 번 생각 않고 맞추겠다고 한다. 내 몸값을 그리 올려주겠다니 나야 환영할 일이고, 이제는 정말 ‘귀중품 다루듯’ 하겠구나, 하고 내심 기대했다. 이번에야말로 그녀가 나를 잘 챙겨주겠지, 자기 몸에 걸친 것 들 중 가장 고가의 상품이 바로 나인데 예전처럼 마구 굴리진 않겠지, 하고 말이다.     



애석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벗어났다. 다초점 렌즈와 비싼 테로 바뀌긴 했지만 여전히 머리 위에 대충 얹혀 있거나 침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잠깐 뺏다 다시 쓰기가 귀찮아서 안경을 쓴 채로 옷을 갈아입는 바람에 옷자락에 쓸려 테도 납작해지고 새 렌즈에도 금방 상처가 났다. 티브이를 보다 소파 근처에 대충 놔두고 혼자 방에 들어가서 자는 것도 예전과 똑같다. 언제쯤 되어야 그녀가 나를 소중히 대해주려나. 이런 생각이 들면 가끔 그녀가 원망스럽다가도, 그녀가 라식 수술을 하지 않고 평생 나와 함께 해준 사실을 떠올리면 문득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녀의 시력은 오래 전부터 0.1이 채 되지 못했다. 시력검사판의 제일 큰 숫자도 맨 눈으로는 또렷하게 안 보이는 정도다. 이제는 난시도 심해지고 노안까지 왔다. 그래서 그녀를 위해 여러 가지 기능을 추가하고 있다. 그 중 블루라이트 차단 기능은 핸드폰과 모니터 앞에서 생활하는 그녀를 위해 꼭 필요한 기능이다. 가끔 시력이 좋지 않아도 안경을 쓰지 않고 생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녀는 흐릿한 세상을 견디지 못했다. 분명하고 정확한 세상을 보기 원했다. 그런 그녀이기에 나도 나름의 최선을 다해 선명하고 깨끗하게 세상을 투과시켜왔다. 그 세월이 벌써 35년이다. 강산이 세 번 변하고도 한 번 더 변할 시절. 새삼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땀 냄새 폴폴 풍기던 어린아이가 봉긋하게 가슴이 나온 사춘기 소녀로 자라고 중고등학교를 거쳐 여드름 가득한 이마를 만지며 입시를 치르던 시절 까지 모두 기억한다. 처음 화장을 하던 날의 어색한 모습과 연애할 때 피어나던 얼굴도, 남자친구와 이별하고 나를 벗어던진 채 울음을 터트리던 날도 생생하다.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던 날도 나는 그녀 얼굴 앞에 있었고, 아이의 입학과 졸업에 감격하던 순간에도 그녀 앞에 서 있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안경테와 렌즈의 겉모습은 바뀌었지만 나는 늘 그녀와 함께 있었다. 나는 세상의 모든 것을 그녀에게 선명하게 통과시켜 보여주었다. 그녀 역시 나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지식을 얻고 관계를 쌓아갔다. 바로 지금 까지도.  



내가 그녀와 떨어지는 날은 언제쯤일까. 아마도 그녀가 세상을 뜨는 날 쯤이 되지 않을까. 나는 그녀가 더 늙어 돋보기안경을 하고 있는 할머니가 되는 날까지, 그리하여 어느 날 옹알대던 손주 놈이 그녀 눈에서 나를 잡아채는 날까지, 그녀가 자꾸 흘러내리는 나를 추켜올리며 손주에게 책을 읽어 줄 날까지, 느릿한 손길로 나를 내려놓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열심히 도와주고 싶다. 그것이 그날 안경점에서 그녀의 낮은 코 위에 올려 졌던 내 운명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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