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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Nov 04. 2021

자기야 밥만 해, 반찬은 내가 할게!


 나는 요리를 못한다.

 사실 나는 아주 경제적이고 창의적인 요리를 한다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서 근본없는 요리라며 아우성을 해댄다. 알탕이 먹고 싶은데 동태알은 없고, 냉장고에 명란젓갈이 있길래 넣었을 뿐인데 그게 왜 비난과 항의의 눈길을 받을 일이란 말인가! 라면이 짜길래 포트로 물을 끓여 그릇에 더 부어준다고 해서 라면을 배신한건 아니지 않은가? 음식에 있어 까탈스럽지 않고 뭐든 잘 먹는 성향인지라 나는 맛있게 잘 먹는데 남들이 맛없다고 한 목소리를 낸다. 도대체 그들과 나 사이엔 어떤 간극이 있는걸까?  



 

올 봄, 집앞 빈 상가에 반찬가게 입점 예정이라는 문구가 붙었다. 안내문구를 보자마자 소리지를 만큼 기뻤고, 이후 오픈하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요알못이라서 맛난 밑반찬이 그립기도하고 일하며 살림하는데 시간이 부족해 필요했던 것도 있다. 드디어 오픈 날. 개업하자마자  달려가서 그 날로 3만원 넘게 반찬을 사면 주는 황금색 장바구니를 선착순으로 받았으며, 이후  일주일에 세 번 이상 꼬박꼬박 들르며 포인트를 쌓고 초스피드로 주인장과 얼굴을 익힌 단골이 되어갔다.


 마음 든든하고 편리한 반찬가게와 함께하는 일주일의 루틴은 이렇다.

 피곤한 월요일 퇴근길에 들러 이것저것 아이들이 좋아하고 잘 먹는 반찬 위주로 골라서 산다. 사온 반찬으로 간단히 저녁을 차리고 남은 반찬은 냉장고에 넣어둔다. 본격적으로 업무가 쏟아지는 화요일, 어제 남은 반찬을 생각하며 조금 늦는 퇴근길도 걱정이 없다. 온라인 수업하는 아이들이 쉽게 먹을 수 있는 카레나 짜장도 자주 챙긴다. 조금 리듬이 올라온 수요일에는 밀키트를 사서 조리를 해서 먹기도하고, 늦으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분식으로 저녁을 먹기도 한다. 목요일 쯤에는 고기도 한 번 구워 먹고 금요일 쯤에는 아파트 장에서 돈까스를 튀겨온다. 이렇게 반찬가게와 함께 일주일을 버틴다. 



 어제 저녁엔 전자렌지에 따끈하게 뎁힌 카레를 내어 저녁상을 차리자 득달같이 큰 아들이 달려온다.

"우와, 카레다! 먹고 싶었는데."

한마디를 던지더니 이후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순식간에 두 그릇을 비운다.

잘 먹는 아들이 기특해 입꼬리가 올라가는데, 먹은 그릇을 개수대에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남긴 한마디에 도로 삐죽삐죽 내려갔다.

"그래도 엄마, 다음에는 수제로 먹고 싶어요."

”아들! 반찬가게 반찬은 발로 만드는 줄 아냐? 다 수제야 수제, 손으로 만드는거라고!”

억울함이 단긴 목소리로 아들에게 하소연하고 묵묵히 내 밥을 먹는데 남편의 한마디가 뒤를 이었다.

"준아, 우리집은 엄마가 재료 사서 하는 것 보다 반찬가게서 사는게 더 절약이야. 지금도 냉장고에서 호박이 썩고있는걸 뭐."

아차, 호박전 하려고 사다 둔 애호박이 있었지! 이런, 깜빡했다. 뭐 어때, 내일 해서 먹으면 되지. 남편의 돌려차기 쯤이야 가뿐히 무시하고 남은 반찬가게 찬을 맛있게 싹싹 긁어 먹었다.



 검은 고양이건 하얀 고양이건 쥐만 잘 잡으면 되는거고, 엄마 손이건 아줌마 손이건 밥만 맛나게 잘 먹을 수 있으면 되는거다. 뭐, 하나하나 손질해서 차려낸 정성밥은 어렵더라도 사온 반찬에 따끈한 밥해서 차려주는게 어디냐, 감사히 먹거라 아들! 엄마는 엄마의 최선을 다한다! 당당히 외친다.   




 내 단골 반찬가게 통유리창에 붙어있는 광고 문구는 '자기야 밥만 해, 반찬은 내가 할께.' 다. 내 육신에 한줄기 빛,  긴 가뭄 끝에 내리는 촉촉한 비 같이 위로와 힐링을 주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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