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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Nov 01. 2021

어린이와의 만남

김소영 작가님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고


지난 여름, 김소영 작가님의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었다. 어린이 독서교실을 진행하며 독서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저자가 어린이들과 겪은 일을 펴낸 책이었는데, 읽고 나니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어린이”라고 공손히 부르며 상냥한 미소를 보내고 싶어졌다. 어린이에게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 어린이처럼 소중한 존재에 대한 감사함, 이미 지나버린 내 어린 시절에 대한 아쉬움 등이 뒤섞이며 한동안 길에서 만나는 모든 아이들을 흘끔거렸다.



며칠 전 퇴근 길에 마트에 들러 우유를 사고 나오는 길이었다. 대여섯 살 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 둘이 심부름을 온 건지 계산대에 줄을 섰다. 자매로 보기에는 키 차이가 별로 나지 않지만 친구라고 보기에는 애매한 체격 차이였다. 엄마들이 연습이라도 시키는 걸까?


겹겹이 나풀거리는 치마를 입은 양갈래 머리 아이는 허리까지 오는 작은 가방 지갑을 크로스로 걸치고 가슴 앞에서 꼭 쥐고 있었다. 그 뒤에서 조금 더 키가 작은 아이는 하나로 길게 묶은 머리에 예쁜 핀을 꼽고 있었다. 작은 아이가 수줍은 표정으로 무거운 짐을 내려놓듯 요구르트를 계산대 위에 내려놓았고, 치마를 입은 아이가 온 팔의 근육을 다 집중해 지갑에서 천 원짜리 세 장을 내밀며 계산원에게 말했다.


“이 돈으로 이거 살 수 있어요?”


그 천진하고 맑으면서 조금 긴장된 목소리. 슬쩍 봐도 요구르트를 사고도 남는 돈이었지만 아이는 혹시나 모자를까 봐 걱정하는 듯 보였다. 돈을 건낸 아이보다 한 살쯤 적어보이는 말총머리 아이는 한 손을 입에 대고선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기라도 한 것처럼 아주머니를 쳐다보았다. 아이의 돈을 받으신 분이 다정히 말씀하셨다.


“이거 사고도 돈이 남네. 잠깐만, 아줌마가 거스름돈 줄 테니까 잘 챙겨가렴.”


작은 아이는 요구르트를 품에 안고, 큰 아이는 지폐와 동전을 손에 꽉 쥐고 마트를 나섰다.

작지만 잘 여문 파란 대추 같은 아이의 주먹. 그 주먹에는 지금 온 세상이 담긴 것 같았다.

걸어가며 가방지갑에 돈을 넣으려는 아이를 보며 나도 모르게 다가가 말했다.


“어린이, 아줌마가 잠깐 말 걸어도 될까?”


중요한 일을 방해했지만 두 아이는 당황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며 내 얘기를 들어주었다.


“걸어가면서 지갑에 돈을 넣으면 바닥에 흘릴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여기 멈춰서서 지갑에 돈을 다 넣고, 지퍼까지 완전히 잠그고 돌아가요. 혹시나 바닥에 떨어트릴지 모르니 아줌마가 같이 지켜봐줄께요.”    

 

아이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고 몇 걸음 마트 출입구에서 비켜서더니 차례로 지갑에 동전과 지폐를 넣기 시작했다. 1분 남짓의 짧은 시간이 나와 두 어린이 주위를 부드럽게 돌며 흘러갔다. 그 동안 요구르트를 들고 있는 아이는 묵묵히 지켜보는 것으로 자신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듯이 지갑을 닫는 손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낑낑대며 가방 안쪽에 돈을 다 넣고 난 아이가 기다리고 있을 엄마에게로 돌아가려고 고개를 든 순간, “조심히 들어가요 어린이.”하고 인사를 건냈다.      



두 아이가 나중에 돌아보았을 때 그저 오지랖 넓은 아줌마의 참견이라고 기억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용기 있는 심부름을 응원하며 지켜봐주는 어른도 있었다고, 사회에는 부모말고도 그런 어른들이 곳곳에 있다고 아이가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책에 감동받아 즉흥적으로 튀어나온 말이고 행동이었지만, 그 후로도 지나는 아이들을 보면 조금 더 친절하게 대해주려고 노력한다. 비록 내 아이들이 어릴 때는 이렇게 여유있는 태도로 지켜봐주지 못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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