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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은 고3이고

내일이 수능이라는데

by 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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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코 앞에 둔 대한민국 고3 큰 아들. 얼마전 18살 큰 아들과 사소한 다툼이 있었다. 한 번만 말해도 충분히 알아듣는데 엄마, 엄마, 엄마를 연달아 불러대며 자기 요구를 들이대는 아들에게 “엄마 부르지 마!”라고 한마디 했다고 생긴 다툼이었다.


아들은 어떻게 엄마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느냐고, 엄마는 나를 자식으로 생각도 안하냐, 엄마에게 너무 서운하고 자신은 엄청 상처받았다며 그 저녁 내내 징징거렸다. 내가 언제 그렇게 말했냐, 자꾸 엄마를 귀찮게 하니 부르지 말라고 얘기한거지, 그런 뜻이 아니라고 재차 설명했음에도 아들은 서운함을 거두지 않았다.


제길, 애를 늦게 낳아 이 나이에 아직도 이런 걸로 열받아야하나.

빌어먹을, 엄마가 아니라면 아닌거지, 왜 저 혼자 오해하고 나를 곡해하고 나한테 승질이냐.

속으로 이런 생각들을 내뱉았지만, 결국 엄마의 양보로 오해를 풀기는 했다.

(그 와중에 꽤나 다정한 욕설이 오가기는 했다.)


흔히 모성신화라고들 말한다. 이때의 신화는 닫힌 신화, 타인의 신념을 인정하지 못하고 보편적인 반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그릇된 신앙과 다르지 않다. 다양한 형태의 모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 부모중 모에게만 강제하는 사회가 만들어낸 미신일 뿐이다.


아직까지 이 강력한 올가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엄마는 많지 않다. 하다못해 육아의 신같은 오은영조차 제 자식은 엉망이라는 뒷담화를 감내하고 있지 않은가. 이 시선들 속에서 싸우며 아이를 낳고 키우고 있는 엄마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선언에 공감하지 않을 도리도 없고.


출산의 경험을 되돌아 생각해보려니 까마득히 먼 일 같고, 지금 내가 책임져야할 목숨은 무겁게 내 어깨에 매달려있다. 종종 주변 후배들로부터 출산과 양육에 관한 고민을 듣는다. 그때마다 내 답은 대동소이하다. 자식을 키운다는 건 정말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찰나의 밀도높은 기쁨이 있으니, 무엇을 선택하건 주변에 휩쓸리지말고 조금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쪽을 택라하고 말해준다. 49 : 51 만큼이라도 기울어진 쪽을 선택했다면 다른 쪽에 미련을 갖지 말라고.


나는 자식을 키우며 나라는 인간의 바닥을 경험했다. 내가 이렇게 형편없는 인간인가, 모자란 인간인가, 추악한 인간인가. 그것은 모성신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연약한 약자를 돌보는 인간으로서 누구나 직면하게 될 문제다. 다행히 추락에서 회복되는 카타르시스를 겪었고, 그 과정에서 나는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견줄만한 다른 무엇을 아직은 모르겠다. 그래서 출산과 양육은 내게 저주이자 축복이다. 아직 끝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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