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결에 가을이 찾아왔다. 베란다에 내놓고 키우는 남천의 잎이 가장자리부터 물들고 있다.
어제는 퇴근길에 버스정류장에서 아들을 만났다. 같이 집으로 걷다보니 여기저기 단풍드는 나무들이 보였다. 노랗고 빨간 색들과 아직 덜 빠진 초록색이 어우러져 화사하게 보였다. 얼른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아들이 말했다.
“엄마, 떨어질 나뭇잎을 왜 찍는거야? 색이 변해서? 나는 봄의 나무가 더 좋던데. 파랗고 싱싱한 잎.”
세상을 향해 줄기를 뻗어나가는 열여덟의 아들의 눈에는 자기처럼 푸르고 빛나는 것들만 보이는건가.
“아들, 너 키우느라 고생한 엄마 흰머리 보면 무슨 생각이 들어? 안 예뻐보여? 비슷한거야.”
“그렇게 말하면 반칙이지, 엄마.”
아들이 멎쩍게 웃는다.
“단풍 예쁜 것도 몰라보고. 그러니 이 시린 마음을 알리가 있나, 팍삭 늙은 엄마나 단풍을 즐겨야지.”
가슴을 부여잡는 시늉을 하며 살짝 눈을 흘겼다.
너는 아직 모르겠지.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열매 맺는 나무의 수고로움도, 다 내려놓고 차가운 겨울을 맞이하려는 나무의 겸허함도. 그래서 단풍놀이는 중년이 즐기고 청춘은 봄마다 벚꽃놀이를 즐기는가보다.
점점이 붉은 빛이 도는 찬란한 이파리를 찍으며 생각했다. 너는 아직 파랗구나. 가을은 네게 아직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