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맥주를 마시며 흑백요리사 결승을 본 저녁에
저녁에 집에 오자마자 옷을 갈아입고 텔레비젼을 켰다. 에어프라이에 쥐포를 굽고 냉장고에 넣어둔 캔맥주를 꺼내 넷플릭스에 접속했다. 엄마 저녁 뭐 먹어? 방학이라고 하루 종일 빈둥대며 시리얼만 먹고 게임하고 놀았을 작은 아이가 물었다. 기다려, 엄마 이거만 보고. 기다렸던 흑백요리사 시즌 2 결승회차를 선택하며 말했다.
사실 누가 우승을 하건 별로 중요치 않았다. 특정인을 응원하지도 않아 떨리는 마음도 없이 그저 얼마나 호기심을 자아내는 요리가 나올까, 어떤 재료들을 사용할까, 심사평은 어떨까가 궁금했다. 화면에선 흑과 백의 결승이 시작되고 나는 비장한 눈빛으로 맥주 캔을 땄다. 결승의 주제는 오직 나만을 위한 요리였다.
<오직 나만을 위한 요리> 라는 자막 뒤로 국내에서 난다긴다하는 최고의 쉐프들이 어렵다고, 어려운 주제라고 말하는 장면이 잡혔다. 지금까지 요리인생에서 타인을 위한 음식을 만들어왔지 정작 자신을 위한 음식은 만들어보지 못했다며 고뇌하는 결승전 참가자 인터뷰도 연이어 나왔다. 온갖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지만, 정작 나를 위해서는 라면밖에 해 본적이 없다는 말을 들으며 살짝 울컥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아이들 먹이려고 갖은 재료와 정성을 들여 첫 이유식을 만들던 순간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아이들 먹이려고 음식을 했지, 내가 먹으려고 시간과 노력을 들인 적은 없다. 오히려 시간을 벌기 위해 내 입에 들어갈 음식은 소홀히 했다. 대충 때운다는 말에 적합한 음식들을 먹을 때가 많았고 같이 먹더라도 내 것을 양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음식만이 아니었다. 한정된 시간, 부족한 에너지를 내게까지 쏟을 수 없었다. 내 안의 물을 퍼서 아이들에게 채우는 게 더 시급하고 중요해서 나는 항상 메마른 채로 간신히 버텨내야했다.
그래서 두 요리사가 오직 나만을 위해 내 이야기가 담긴 음식들 요리하는 순간순간들이 내게는 위로 같았다. 나를 대접하고 나를 위한 요리, 내가 행복하고 내가 즐겁기 위한 요리를 완성하려 가지고 있는 모든 기술과 실력과 진심을 담아 움직이는 과정들이 마치 수행인듯 기도인듯 보였다. 화면 속에서 완성되어 가는 저 음식이 자기를 위한 최고의 음식이 될 수 있을까. 맡아질 리 없는 그 공간의 냄새가 전해지는 것 같아 맥주만 벌컥벌컥 들이켰다.
주어진 90분의 시간이 다 지나고 드디어 요리가 완성되었다. 마지막 심사는 자기의 서사로 새롭게 해석한 요리를 들고 두 명의 심사위원과 함께 먹는 거였다. 자신을 위한 요리였음에도 긴장탓인지 두 요리사는 잘 먹지 못했고, 그에 반해 심사위원은 남기지 않고 다 비웠다.
최강록의 음식을 먹고 안성재 심사위원이 말했다. 낮고 따뜻한 음성으로, 어니스트한 음식이라고.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수건을 가지러 갈 틈도 없어 소매로 눈물을 닦아내는데도 계속 계속 눈물이 흘렀다. 거짓없이 담아낸 그 맛에 대해 하는 말이 나에게 전해주는 말 같아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음식을 먹고 어니스트하다고 평할 수 있었을까. 요리사는 그 맛을 어떻게 만들어내고 전달했을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넣어 만든 따뜻한 국물요리 하나일 뿐인데. 자신의 시간과 길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씩 쌓아올린 맛을 자기에게 돌려주는 그 순간이 너무나 아름답고 다정해서 내가 위로를 받는 것만 같았다. 그 자신이 증명해낸 정직함과 순수함으로 우승은 그의 것이 되었다.
텔레비젼을 끄고 진작에 다 마신 나의 노동주, 맥주캔을 들고 일어섰다. 다시 내일을 살아갈 힘을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나를 위해 주는 것인가보다. 나에게도 소박한 정성의 순간을 주자. 어니스트한 음식은 못 만들지만, 어니스트한 글은 써보자고 다짐했다. 쓰레기를 치우고 늦은 저녁을 준비하는 마음이 한결 평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