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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Nov 23. 2021

진심을 파는 반찬가게

마음이 서비스인 곳

걸어서 5분 안 팎으로 걸리는 반찬가게가 집 앞에 둘이나 있다. 일명 반세권 중에서도 특지다. 

(그 중 한 가게가 지난 번 글에 소개했던 가게고, 오늘은 다른 가게다. )


집 바로 앞 가게는 토요일마다 반찬 대신 김밥이 나온다. 밥을 꾹꾹 눌러 펼치고 온갖 재료들을 넣어 감싼 야채김밥, 고소하게 볶은 양념소고기를 넣은 소고기 김밥, 참치를 마요네즈에 버무려 넣은 참치 김밥, 딱 세 종류만 만드시는데 쟁반 가득 산처럼 쌓아올려두어도 늘 완판이다.야채 한 줄에 3천원, 참치와 소고기는 4천원이라 결코 싸지 않은 가격인데 완전 집 김밥같은 순한 맛에 재료를 꽉꽉 눌러 담아 크게 만 대형 김밥 이라 한 줄만 먹어도 배불러 비싸다는 생각이 안 든다. 토요일 느지막이 일어나 뭘 먹을까 싶을 때 얼른 내려가서 몇 줄 사오면 아이들과 간단히 먹기 좋은 브런치(!)가 된다. 



지난 토요일에는 아이들은 두고 부부만 외출했었다. 먹을 것을 챙겨 주고 나가긴 했는데 큰 아들이 허기가 진다고 해서 돌아오는 길에 큰 애가 좋아하는 참치김밥을 사려고 부랴부랴 반찬가게에 들렀다. 가게 밖에서 통유리로 보이는데 김밥이 딱 네 줄 남아있었다. '아이고 벌써 다 나갔구나' 생각하며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야채 김밥만 남아 있었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싶어 남은 김밥을 다 집어 들고 계산대로 발을 옮기는데, 냉장고에 참치김치볶음이 보였다. 참치 김밥 대신에 요거랑 같이 먹으라 할까 싶어 잠시 머뭇거리며 들여다봤다. 그 짧은 찰나, 집에서 그냥 참치캔 꺼내주지 싶은 생각이들어 팩을 내려놓고 돌아섰다. 


계산하려니 계산대에 사장님 말고 처음 보는 얼굴의 점원이 있었다. 앳된 표정의 아가씨가 장바구니에 김밥을 담고는 갑자기 냉장고에서 아까 내가 내려놓은참치김치볶음을 들어온다. 그러더니, “이거 한 번 드셔보세요. 진짜 맛있어요. 저 수능보러 갈때도 도시락 반찬으로 싸갔던거에요.”하며 조금전 내가 들여다 보고 있었던 반찬 팩을 봉투 안에 집어넣는다.

 “어머, 감사해요, 잘 먹을게요. 진짜 맛있어보여요. 그럼 이번에 수능본거에요? ”

고마운 마음에 아줌마 오지랖 에너지가 풀(Full)로 튀어나와 버렸다. 아직 어린 나이, 힘든 시험 끝내고 놀고 싶을 텐데 주말에 가게에 나와 엄마를 돕고 있는 학생이라니. 어찌가 기특하던지, 나도 모르게 몇마디 칭찬이 더 붙어나와 버렸고 학생은 마냥 수줍게만 웃었다. 


자기가 먹은 엄마의 도시락 반찬이 정말 맛있어서 권하는 마음도 예쁘고, 그렇게 만들었던 반찬을 손님에게 내놓는 가게도 예쁘고, 서비스로 받은 반찬도 예뻐서,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가게를 나왔다. 그 날 먹은 김밥이 엄청나게 맛있었던 두 말할 필요도 없었다. (사진을 찍어두었어야 하는건데 먹느라 바빠 못했던게 유일한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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