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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Nov 22. 2021

각자의 잠버릇

잠들 때 나타나는 일

나는 안방에서 열한 살 된 작은 아이와 함께 잠을 잔다. 아직도 아이와 껴안고 잠을 자고 있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자기 전이나 막 일어났을 때, 제일 먼저 엄마한테 뽀뽀부터 해주는 아이와의 교감을 놓칠 수 없어 내가 원해서 같이 자고 있다.


잠자리 독립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아들이기도 하고 독립심을 길러주기 위해서라도 잠을 따로 자는게 어떠냐는 의견도 옳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여전히 옆에서 등 긁어달라고 내미는 아이의 등에 손가락으로 글씨 쓰며 맞춰보라고 놀다 잠드는 순간이 감사하고, 가끔 같이 책을 읽거나 하루 동안 있었던 얘기를 나누는 날들이 좋아 죽겠을 뿐이다.


아직 4학년인 작은 아이는 엄마가 자신과 함께 자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약간의 협박이나 협상 용도로 활용하기도 한다. 지난 번에는 잘 시간이 넘었는데 혼자 소파에 달랑 드러누워서는 “나 이제 아가 아니니까 엄마랑 같이 안자. 형아랑 잘거야” 라고 말했다. 게임하고 더 놀고 싶은데 못하게 하니 삐져서 하는 소리인걸 알지만 귀엽고 애틋해서 그야말로 바짓가랑이 잡고 늘어지듯 매달렸다.

“안돼 엄마랑 자야돼! 아직은 엄마랑 자다가 6학년되면 형아랑 자!!”



사실 애들 방에는 두 형제가 같이 자는 이층침대가 있다. 일층은 형이 쓰고 이층은 동생이 쓰는데 이층은 비워져있을 때가 더 많다. 가끔 둘이 같이 놀다 늦게 잠드는 날에만 두 침대가 다 제 주인을 맞는다. 작은 아이가 대개는 엄마랑 같이 자기 때문이다. 그 사이 중2 큰 아들도 혼자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코로나로 중학생이 되어 항상 집안에서 네 살 밑의 동생과 함께 있었는데, 잘때만이라도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큰 아들 준이는 방문을 열어 놓고 잔다. 문이 닫히면 더 조용하고 평안하게 잠들것 같은데 꼭 반 쯤 문을 열어둔다. 닫힌 방문을 보는게 답답하고 혼자 있는 실감이 들어서 도리어 무섭단다. 어딘가와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아이가 문을 열고 자게 만드는 것 같다.  방문 뿐 아니라 창문도 열고 잔다. 비염 있어서 차가운 공기가 쥐약이라 걱정인데 꼭 얼굴을 창문 쪽으로 향하고 차가운 공기를 마셔야 잠이 든다. 그 바람에 작년부터는 아예 한겨울에도 난방을 안한다.



큰 아들과 달리 우리 집에서 제일 늙은 아들(남편)은 꼭 문을 닫고 잔다. 성경에는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부부가 같은 방에서 자라고 하지만, 우리 부부는 싸우지 않는 대신에 잠은 따로 잔다. 나는 작은 아이와 자고, 남편은 혼자서 유튜브를 보며 자신만의 완벽한 공간을 만들어 그 속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자는지 오래됐다. 알파룸 바닥에 이불을 깔고 보일러까지 틀어가며 이불을 덥고 백설공주라도 된 양 두 손을 모으고 잠에 빠진다. 잘 때 자기를 건드리면 잠이 깨는 예민한 사람이라 옆에 누가 있으면 잠을 잘 못잔다.


반면에 나는 잠버릇이 험한 편이다. 어느 정도로 고약하냐면 어릴 때 별명이 하도 돌아다니면서 자서 풍차였다. 어느 명절에는 안방에서 친척들이 다 같이 이불펴고 잠들었는데, 일어나 보니 내가 없어져서 온 집안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집 안팎으로 나를 찾아다니시며 소동아닌 소동이 벌어졌는데 정작 나는 방 구석 책상 밑에 기어들어가서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단다. 물론 나는 기억이 없고 크고 나서 어른들이 해주신 얘기였다. 그정도로 잠버릇이 심했고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자면서 이리저리 몸을 많이 뒤척인다.(고 한다.) 이집트 미이라 모양으로 잠들면 그 자세 그대로 아침에 일어나는 남편과는 부부합방을 할래야 할 수 없는 운명인 셈이다.



 사람들마다 각자가 잠드는 방식과 버릇이 있다. 예민한 사람, 둔감한 사람, 잠드는데 시간이 필요한 사람, 바로 잠드는 사람, 혼자 자는 게 편한 사람, 누군가와 같이 자는 게 안심이 되는 사람, 문을 열고 자는 사람, 꼭 닫고 자는 사람, 불을 켜놓고 자는 사람 어두워야 자는 사람, 높은 베개가 좋은 사람, 낮은 베개가 좋은 사람…… 한 집에 사는 식구끼리도 다 다르다. 삼십년 간 남으로 살다 어느 날을 기점으로 함께 살기 시작하는 남녀도, 오랜 세월 함께 살아 모든 것을 다 이해하는 부부도, 부모자식 사이도 다를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수 만큼 다른 잠버릇 그 사이 어딘가에 배려와 사랑이 있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깊은 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다 똑같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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