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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Dec 01. 2021

몸치와 무술대백과

할머니 무술가가 되어볼까


 국민학교 고학년무렵까지 즐겨보던 책이 있었다. 크기는 어린애 손바닥만하지만 당시 제법 두껍고 사진화보가 잔뜩 들어서 무거웠던 <무술대백과>다. 출판사는 정확히 기억 안나지만 ‘다이나믹 콩콩’ 이라는 이름은 기억난다. 구글링해봤는데 내 기억 속의 책은 찾지 못했다. 아마 80년대 무수히 쏟아져 나온 해적판 중 하나일거라 짐작한다. 당랑권, 취권, 소림권, 팔괘권, 태극권, 등등등 각종 무술의 종류와 특징을 나열하고 멋진 무술영화 속 장면과 함께 수련방법까지 소개하는 책이었다. 책을 보며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의 모습에 빠지기도 하고 판타지에 젖어들기도 했으며 같이 힘든 고난 끝에 고수가 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이 책을 그냥 좋아하기만 한 게 아니었다. 책등이 쩍쩍 갈라지고 낱장이 너덜너덜하게 떨어져 나가도록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보고, 좋아하는 장면이 나오면 펼쳐놓고 읽고 또 읽었다. 심지어 책에 나온 동작을 흉내내거나 수련방법 마저 따라했다. 뜨겁게 달군 모래를 손가락끝으로 내리치며 단련하는 ‘철사장’을 수련하겠다면 놀이터에서 손가락을 세워 모래를 푹푹 찌르기도 하고, 지금으로 치면 스쿼트 연습 같은 기마자세를 수련하겠다고 벽에 기대 서서 두 팔을 앞으로  뻗고 두 다리 위에 무거운 책을 올려 놓은 채 버티기도 했었다. 이럴 때마다 세살, 다섯살 어린 동생들은 옆에서 내 호통에 따라 보조를 해야만 했다. 고된 수련과정이라기보다는 놀이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가족 중에 운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처럼 태권도 학원을 다녀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며, 극장에서 무협영화를 볼 나이도 아닌 평범한 여자아이가 어떻게 무술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몸치였다. 지금도 운동이라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둔하고 둔한 운동신경 덕에 집안에서 아버지가 붙여준 별명이 ‘둔자’였을 정도니까. 초중고 12년 동안 피구 시간에 나를 향해 날아오는 공을 한 번도 잡아보지 못했다.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긴장한 채 피해다니다 공에 맞고 힘없이 선 밖으로 나가는 아이가 나였다. 이 모자란 운동신경은 성인이 되어서도 변함없어서 신체능력이 가장 좋을 20대에 수영을 배우면서도 힘들어 했다. 부끄럽지만 중학생부터 60대 아주머니가지 모인 수영레슨 기초반에서도 가장 습득이 느렸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다리를 첨벙거리며 미친듯이 전진했다고 생각했는데 중간도 못가고 물 밖으로 나온 적이 비일비재했다. 결국 자유형도 다 못 배우고 수영 레슨은 막을 내려야했다. 30대에 시작한 요가는 더 가관이었다. 거울을 보면 다들 턱이 바닥에 닿아 있는데 나만 혼자 뻣뻣하게 상체를 들고 거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더 숙여지지 않고 더 내려가지 않고 더 벌려지지 않는것을 어쩌란 말인지,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바라보며 울고 싶었다.


운동과는 담 쌓았지만 몸을 움직이면서 기쁨을 느낀 적은 있었다. 대학 시절 우연히 원데이 클래스로 마임을 배웠다.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긴장을 풀고 몸을 움직였을 때, 내 몸에 이런 곳도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내 몸 여기 저기의 관절과 뼈마디, 근육들이 자신도 존재한다고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생소하고 낯설면서 기이한 감동의 시간이었다. 내가 내 몸을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경함, 기분좋은 피로감 등이 몸에 관한 새로운 마음을 열게 해주었지만 꾸준히 계속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동경했을거다. 유연하면서 절도 있는 무술가들의 몸동장과 끝없는 단련으로 경지에 오르는 그들의 내공을. 자신의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고수가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부러움과 존경은 이후 무용과 춤에 대한 흥미로까지 이어졌다. 스포츠 종목 중에 피겨와 체조를 좋아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몸으로 하는 일은 잘 못한다.  모자란 운동신경 탓에 동경하는 춤이나 무술, 운동 중 무엇하나 제대로 배우지 못했지만 아름다운 몸선과 몸의 움직임을 감상하기를 좋아한다. 몸으로 그리는 그림, 몸으로 연주하는 음악, 몸으로 쓰는 시, 모든 몸의 움직임을 좋아하며 그 아름다움에 감탄할 때 행복하다.


이제는 아름다움을 경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몸을 움직여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건강을 위해 최소한의 운동을 권고받고 있는 나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나빠지지 않기 위해 운동을 해야하는데, 진짜로 걷기라도 열심히 해야할텐데, 아직도 가만히 앉아서 타인의 몸을 감상만 하고 있다. 하지만 말 나온 김에 조금씩 몸을 움직이며 내 몸을 써보려한다. 겨우 걷기만 하고 있지만 십년 쯤 후에는 머리를 단정히 묶고 양 손을 모아 태극권을 연습하고 있을수도 있다. 사람일은 모르는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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