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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Dec 05. 2021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았다.

XXX-OOO-XXXX.

핸드폰 화면에 뜬 발신자번호를 본 순간, 이미 영은 불안과 우울에 사로잡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하며 말을 꺼내면서도 온 몸이 귀로 만들어지기라도 한 양 곧 흘러나올 선생님의 첫마디를 신중히 듣기 위해 귀에 정신을 집중했다. 수화기 너머로 주저하는 듯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네, 어머니 다름 아니라, 사실은 오늘 윤이가요.”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 행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이렇게 담임선생님의 전화로 확인한다. 오늘 전화도 역시나였다. 아이가 학교에서 부적응행동을 했다고 연락을 받을 때마다 영은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진다는 말을 온몸으로 절감했다. 수화기 너머로 다다다다 울리는 담임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심장을 옥죄는 느낌이었다.  


윤이 학교를 힘들어하기 시작한 건 작년, 초등학교 2학년 여름부터 였다. 학교에서 하는 모든 활동을 거부하더니 교실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들어가서도 조금만 자신에게 버거운 활동이 나오거나 싫어하는 활동이 나오면 교실 밖으로 도망쳤으며 급기야는 등교하지 않겠다고 버팅기기까지 했다.


아이가 이렇게 변할 동안 영은 좀체 아이의 신호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조금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아이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고, 남자 아이라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잘 얘기를 안하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어떤 방법과 방향으로 가야하는지 짐작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요즘 젊은 엄마들과 달리 학업이나 사교육에도 의미를 두지 않아 한 마디로 아이는 자유를 가장한 방임상태였다.  


담임으로부터의 연이은 연락으로 뒤늦게 영과 남편은 아이 상태가 심각함을 알고 허둥지둥 정신건강심리센터를 찾아 종합심리검사를 진행했다. 센터를 찾아 예약하는데 몇 주, 검사하고 결과가 나오는 데 또 몇 주 걸린다고 했다. 그렇게 한 달이 넘어가는 시간 동안 아이는 여전히 문제행동을 계속하고 있었고, 영은 계속되는 담임의 전화에 신경쇠약 직전이었다. 길고 지루한 시간, 답답하고 불안한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영은 계속 혼란스러웠다.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지,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담임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누구 탓을 하면 문제가 가벼워질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면 문제가 해결되리란 희망을 안고 힘들게 버티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결과가 나왔다는 문자를 받았다. 영은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직장도 연차를 내고 센터로 향했다. 왕복 네 시간이 걸리는 거리지만 아이를 위해 추천받은 곳이라 시간과 거리도 마다않고 달려갔다.


결과는 의외였다. 불안기질이 높음. 그 외 별다른 발달상 문제는 보이지 않음. 부모의 양육태도가 건강한 편은 아님. 센터장의 입에서 나오는 설명을 들으며 영이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겨우 이것 뿐이었다. ‘무언가 문제가 있어서 부적응행동이 나온게 아니라면 전부 다 내 탓인건가? 내 잘못인가?’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것 같았다. 영은 육아태도, 유전적기질, 주변 상황. 뭐라고 말한들 다 자신 탓인것처럼 느껴졌다. 특별한 문제는 보이지 않으나 불안기질이 높다. 내가 뭘 어째야 한단말인가? 매끄럽고 부드러운 센터장의 목소리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고 구원의 동앗줄 같은 해결방법도 내려오지 않았다.




윤의 등교거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시간은 흘렀다. 아이는 3학년이 되었고 여전히 학교에서 부적응행동을 반복한다. 이제 겨우 10살인데 힘겹게 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이를 보며 영은 바닥으로 가라앉는 마음을 매일같이 추스려야만 했다. 새 담임을 만나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실낱 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코로나를 고마워하기라도 해야하는건지, 등교를 하지 않는 온라인 학습 기간에 아이는 되려 평온해지고 안정적이 되어갔다. 집안에서 뒹굴대며 아무것도 안 하는 아이를 보며 안심하고 있는 상황이 안타까웠지만 직장에 출근하며 직장일에 매진하느라 집에서 혼자 놀고 있을 아이를 살뜰히 챙기지 못했다. 그 죄책감 때문에 더 아이를 강하게 훈육하지 못한 때문은 아닐까 하는 끝없는 쳇바퀴에서 영은 뛰어내리지도 멈추지도 못하고 매일 같은 불안과 절망을 반복하고 있었다.


코로나 상황이 변화되며 등교일이 확대되고 영은 또다시 불안해 했다. 별일이 생기지는 않는건지, 학급 친구들과 문제는 없는건 지, 등교일이 되면 마음을 졸였다. 겨우 일주일에 한 번 가는 등교일이라 그랬던걸까? 아니면 새 담임이 관대한 걸까? 다행히 한 학기가 지나도록 전화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방심했을 것이다. 오후에 걸려온 전화의 발신지가 윤 학교번호인것을 알아채자마자 심장이 미친듯이 뛰기시작했다.


“...... 안녕하세요,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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