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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Dec 06. 2021

천민이라서 그래

천민의 일기 모음

2021 1130 - 


옆 단지 아파트에 장이 섰다. 처음 열리는 장이다. 입주민 카페에서 그 소식을 보자마자 장 서는 날을 기다렸고, 그 날이 되자 퇴근 하며 남편 손을 잡고 장에 갔다. 

퇴근 후라 벌써 어두워지고 있는데 멀리서도 장날 분위기가 느껴졌다. 평소와 달리 아파트 단지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소리 높여 물건값을 부르며 지나가는 행인을 유혹하는 상인의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색색의 천막과 전등불빛을 보며 걷자니 왠지 설레고 마음이 들떴다.


“여보, 난 장에만 가면 설렌다.”

“어, 천민이라서그래.”

“뭐?”

“귀족들은 백화점에서 배달시키겠지 뭐.”


심드렁하게 말하는 남편 때문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너무한다, 마누라한테 천민이 뭐냐!”하며 등을 펑펑 내리치면서도 속으론 동감하고 있었다.


그러네, 아파트 장에 소박하게 설레고 푸드트럭에 신나서 장바구니 챙겨들고 나오는 우리는 천민이네. 어쩌겠어, 이렇게 살아야지. 


족발과 타코야키, 돈까스랑 묵사발을 양손 가득 사들고 집에 들어가 푸짐하게 먹은 평범한 날의 이야기다.




2021 1205 -


믹스커피 둘, 카누 하나, 물 듬뿍

아침에 느지막히 일어나 식빵 두 장을 구워 딸기쨈을 듬뿍 올려 믹스커피와 함께 먹었다. 그게 9시 쯤이었나 싶은데 아직 12시가 되지 않은 지금, 또 배가 허전하다. 


냉장고 안에서 맛나게 익어가는 친정엄마의 김장김치를 꺼내 찹쌀넣고 지은 밥이랑 한 입 가득 먹고 싶다. 고들빼기 김치도 있고 폭 삭은 총각김치도 있다. 반찬가게서 사온 향기가득한 냉이나물까지 꺼내서 숟가락에 넘치도록 볼이 빵빵해지도록 입 안에 넣어볼까. 


사실 탄수화물 가득한 먹거리는 중년에겐 치명적이다. 알고있는데도 탄수화물을 줄이는게 힘이든다. 불룩하니 무겁게 나온 뱃살 때문에 허리가 아파 주말 내내 끙끙대고 있는대도, 어제도 운동은 하지 않고 맥주만 마셔댔다. 아픈 허리를 핑계로 아버님 뵈러도 안 갔는데, 아무래도 애들 하고 산책이라도 다녀와야할 것 같다. 재채기만 해도 허리가 뻐끈하다.


그나저나 무슨 핑계로 저 사춘기 아들을 끌고 나가야할까. 추운 날씨 탓에 더 곰이 되어가는 아들을 데려가려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놓고 비위를 맞춰야한다. 아이고, 앓느니 죽지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소박한 글쓰기를 지속하는 주말 여유가 너무 행복해서 자꾸 게을러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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