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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Dec 11. 2021

그 집에서 OO를 발견했다.

누군가의 마지막 편지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아이들이 아직 어린이집에 다니던 때, 3층짜리 주택 1층에 세 들어 살았다. 어린 두 아들이 신나게 뛰어다니며 놀아도 아랫집에 폐끼치지 않을 1층, 이왕이면 아파트가 아니라 마당이 있는 주택으로 찾아다니다 만난 집이었다. 베란다가 아니라 통창이 있었고, 창밖으로 작은 툇마루와 데크가 깔린 손바닥 같은 앞뜰이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작은 정원에는 울타리를 따라 덩굴장미가 심겨져 있고 커다란 단풍나무, 작은 꽃나무와 이름 모를 조경수까지 있었다.


첫 눈에 반해 집을 계약하고 일사천리로 이사준비를 마쳤다.

드디어 이삿날, 정신없이 이것저것 챙기며 이사를 마치고 집 앞 작은 슈퍼에 쓰레기봉투를 사러 갔다. 종량제 봉투를 사고 계산을 하려는데, 아주머니께서 “저 위에 약국집 들어오는 거예요? 드디어 그 집에 사람이 들어오는구나!” 라며 말을 거셨다.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어 “왜요? 이 집에 사람이 없었나요?”하고 되물었는데 아주머니는 약간 멈칫하시더니 말을 얼버무리며 고개를 돌리셨다. 그때는 경황이 없어 더 물어보지 못하고 50L짜리 두 장을 사서 가게를 나섰다. 돌이켜보면 그때 아주머니에게 더 자세히 캐물었어야했다. 그런다고 달라지는건 없었겠지만.


이사한 집은 한동안 세입자가 없이 비어 있었다. 덕분에 이사날짜도 우리 편한 대로 잡을 수 있었고, 집안은 전체 수리를 해서 내부가 깨끗했다. 욕실이며 주방이 새 집 같이 윤이 났고 도배도 새로 되어 있는데다 마당도 잘 정리되어 있어서 정말 좋았다. 거실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커피 한 잔과 함께 기분도 낼 수 있었고, 뒤쪽 주차장에는 우리 차를 주차해 놓으라고 하셔서 여러 가지로 집에 대해 만족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마당에서 소소한 놀이를 하는 것이 좋았다. 빗자루로 마당을 쓰는 것도 즐거웠고 소소한 채소류를 심어 가꿔도 보았으며 여러 가지 벌레를 구경하며 노는 재미가 쏠쏠했다.

여름날 마당에서의 물놀이 만큼 즐거운 게 있을까.

다만 한 가지 신경 쓰이는 점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이전 세입자의 우편물이었다. 이사하고 몇 달이 지나도록 우리 집 주소로 이전 세입자의 우편물이 자꾸 오는 거였다. 주소변경을 안했는지 핸드폰요금 연체고지서가 계속 우리 집으로 오는데 도대체가 찾아가지를 않아 버리지도 못하고 몇 달씩 우편함에 그대로 꽂혀있었다.

연락할 방법이 없어 애물단지 같던 우편물을 잘 모아서 우편함 옆에 따로 쌓아두는데 마침 들어오시던 3층 집주인 할아버지를 만났다. 인사를 드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걸어오셨다.


“집이 깨끗하죠? 내가 신혼집같이 잘 해놨다고. 싱크대며 도배며 싹 고쳐놨어. 깨끗하게 잘 쓰세요. 전에 살던 사람이 아주 고약해서 나가면서 변기도 다 깨 놓고 엉망으로 해놓고 나갔거든.”


그러고는 휭 하니 들어가셨다. 집주인으로서 세입자가 못마땅해서 당부를 하시려나보다 싶었는데, 저녁에 남편에게 이 얘기를 해주다보니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부부싸움인지 집주인에게 화를 낸 건지 모르지만 그렇게 망가트려놓으면 손해배상 받을 텐데 그걸 왜 할아버지가 수리했을까. 잠깐 궁금했지만 집을 깨끗하게 쓰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넘어갔다.


봄에 이사하고 장마철도 무사히 잘 넘기고 가을도 지나 겨울이 되었다. 아이들과 마당에 감을 깎아 곶감을 말리고 나뭇잎을 쓸며 전원주택 기분도 낼 수 있었다. 일 년 가까이 지내보니 집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 아이들 클 동안 계속 지내고 싶었는데 겨울이 깊어가며 사정이 급변했다. 결로가 지나치게 심했다. 창문과 현관문에서 물이 흘러 바닥에 고일 정도였고, 벽에서도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가구 뒷면부터 아이들 방 까지 전체 벽에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다. 집주인 할아버지에게도 말했지만 환기를 잘 시키라고, 이전에는 이런 문제가 없었다는 답변만 들었다. 매일 같이 벽을 마른 수건으로 닦아내야만 했던 나날이었다. 남편은 집의 하자에 대해 집주인에게 항의를 했고 결국엔 이사를 결심했다. 그러니 남은 기간까지는 어떻게든 습기와 곰팡이를 제거하며 최대한 잘 지낼 수 밖에 없었다.

벽 전체가 결로로 다 젖어버려 벽지를 다 뜯어내야만 했다.

그날은 아이들을 안방에 재우고 아이들 방의 가구를 다 들어내고 벽을 닦고 있었다. 창문을 하루 종일 열어놓아도 결로가 심해 바닥에도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닦아내다보니 장판 속으로까지 물이 흘러들어간 것 같았다. 요즘에야 바닥재가 다 따로 있지만 당시만 해도 방바닥에 장판을 깔아두는 집이 흔했다. 장판 밑에까지 고인 물을 닦으려고 방 가운데서 겹쳐진 장판을 들어 냈는데, 젖은 시멘트 바닥 위에 종이가 한 장 붙어 있었다.


뜬금없이 바닥에 A4 용지가 왜 들어있을까 싶어 집어들었다. 물이 살짝 스며들어 젖었지만 볼펜으로 쓴 손 글씨는 또렷하게 남아 맥락을 파악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첫부분을 보아하니 편지였다. 방바닥에서 나온 편지라니 의아했지만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서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보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살피면 살필수록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길한 느낌. 그건 분명 세상을 떠나려고 결심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남기는 글이었다.


종이에는 이렇게 밖에 못해줘 미안하다는 아빠의 말이 반복되어 있었고, 새엄마와 갈등을 겪는 아이에게 앞으로 잘 지내라고 적혀있었다. 새엄마를 믿고 의지하라는 당부와 미안함을 토로하는 그 글은, 분명 누군가의 유서였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미묘한 분위기와 비애감이 글 전체에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마지막에 남긴 이름, 그건 우리집 우편함에 매달 도착하던 요금 납부 독촉장에 쓰여 있던 이전 세입자의 이름이었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찬물을 뒤집어 쓰는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런 한여름 밤의 괴담같은 일이 내게 일어나다니! 누군가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집에 세 들어 살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그래서 이사하던 날 슈퍼 아주머니가 그런 말을 했던 거로구나! 퍼즐처럼 생각들이 연결되기 시작했다. 쌓여가는 주인 없는 우편물, ‘부부싸움으로 변기를 다 깨놔서 깨끗하게 수리했다’, ‘한 동안 세 들 사람이 안 와서 기다렸다.’ 같은 얘기들이 떠올랐다. 청소하다 말고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처음에는 죽은 자에게 마음 아파하기보다 아이들이 자고 놀던 방에서 이전에 누군가가 생을 마감했다는 생각이 들어 무서웠다. 아무것도 모르고 생활한 이 집에서 누군가가 목숨을 끊었다니. 목을 매었을까, 약을 먹었을까, 유서 위에서 아이들이 놀고 먹고 잤다고 생각하자 찜찜한 기분을 떨쳐버리기 힘들었다. 애써 다르게 생각해보려고도 했다. 내 지나친 상상일 수도 있을거라고 편지를 다르게 해석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런 마음과 달리 정성스러운 글씨로 써내려간 그 편지에 자꾸 눈이 갔다.



밤을 보내는 동안 찬찬히 생각해보았다.

이 집에서 우리 가족 이전에 한 가족이 살았다.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떤 얼굴로 어떤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었을까. 나처럼 나무를 보고 좋아했을까, 비 오면 밖을 바라보며 즐겼을까. 가족간에는 어떤 대화가 오갔을까. 어떤 힘든일이 있었길래 이런 선택을 했을까.


비로소 전에 살았던 사람에 대한 궁금함과 애도가 밀려들었다. 삶의 끈을 놓아버린 사람과 남은 사람에 대한 슬픔이 밀려들었다. 생을 놓는 마지막까지 당부했던 대로 남은 가족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잘 지냈을까 궁금해졌고, 그럴만큼 가족을 생각했던 사람이 왜 떠나야 했을지 사연이 짐작도 되지 않아 가슴이 먹먹했다. 애초에 장판 밑에 마지막 편지를 넣어둔 사람은 어떤 심경이었을까. 이 절절한 아버지의 편지를 전달받지 못한 가족들은 이 마음을 모르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자 너무나 안타까웠다.



편지를 주인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드라마 주인공이 아니었다. 고작 이전 신문 사회면을 뒤져 사고가 없었나 찾아보고, 인터넷으로 이름을 검색해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부동산에 문의해봐도 이사간 사람의 새주소를 알아낼 수는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어떻게 해서든 편지의 수신인을 찾아 마지막 고인의 편지를 대신 전해주고 싶었지만 내 마음과는 달리 그저 발견된 곳에 그대로 넣어두는 것 밖에는 하지 못했다. 그리고 몇 달 뒤, 봄이 시작될 무렵 우리는 다른 집으로 이사를 했다.


한동안 옆동네로 이사하고도 가끔 근처를 들릴 일이 있으면 부러 길을 돌아서 그 빨간 벽돌집을 보러 가곤 했다. 그 집은 새로 사람을 들이지 않는 듯 했다. 마당도 아예 없애고 시멘트 바닥으로 바꿔버렸다. 담장 너머로 보아도 창문이 방범창으로 닫혀있는 것이 사람이 사는 흔적이 보이질 않았다. 편지는, 여전히 그 곳에 있을까.



지금도 가끔 그 집을 떠올린다. 제일 먼저 어렸던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놀았던 일이 떠오르고, 이기적이며 계산적이었던 집주인이 뒤이어 생각나면, 마지막엔 깊은 밤 아이들을 재우고 혼자 방을 치우다 발견한 누군가의 마지막 편지가 떠오른다. 이내 끝내 전해지지 못한 마지막 마음이 애달파서 심장이 저릿해진다. 그럴때면 고인의 영혼이 평안하기를, 남은 가족들도 슬픔을 극복하고 평안히 잘 지내고 있기를, 부디 그렇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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