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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Dec 09. 2021

초등 아들이 귀를 파줍니다.


열한 살 된 아들의 여린 넓적다리를 베고 눕는다. 


아이의 조그만 손이 내 귀를 이리저리 잡아당기고 곧 면봉으로 귀 안 쪽을 살살 긁기 시작하면, 나는 햇살 아래 나른한 표정으로 내려앉는 채반 위 야채가 된다.


볕 좋은 곳에서 골골거리는 졸린 고양이처럼 입가가 씰룩대고, ‘제발 귓속에 귀지가 많아라’하고 빌면서  나도 모르게 아들의 종아리를 쓸어내린다.  


혹여 아주 작은 귀지 하나, 부스러진 조각이라도 나올라치면 아이는 광산에서 보물을 캐낸 광부처럼 신이 난다. 파낸 귀지를 무슨 보물이라도 된 양, 날숨에 날아갈까 소중히 손가락 위에 올려서 내 눈 앞에 들이밀고 굳이 확인 시켜준다. 


아무 말 없이 사라락 거리는 소리만 들리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아서, 

아무것도 없이 깨끗하다고 하면, 

아니라고 다시 한 번 더 봐보라고, 

자세히 보면 보일거라고, 

굳이 채근하며 반대쪽으로 돌아눕는다.  


그러면 아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 번더 귀를 잡아당기고 고개를 숙여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 모습이 좋아서 또 한 번 아이 무릎위에 뺨을 부빈다. 


베고 누운 조그만 다리의 온기에 절로 잠이 들것만 같은 밤. 

하루의 피로가 씻겨내리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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