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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Sep 24. 2022

무서운 사람은 꼬옥 안아줄게요

어느 날 집에 가던 길에

태풍이 온다고 했다. 하늘은 구름으로 덮여 어두컴컴했고 여느 날보다 강한 바람이 불었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복도로 나와 창가에 조롱조롱 매달렸다. “선생님, 바람이 시원해요!” 바람처럼 웃음을 흩날리며 아이들이 말했다. 다가올 태풍도 폭우도 아이들의 얼굴에 그늘을 만들 수는 없었다. 쉬는 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리고 아이들은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처럼 자기 자리로 들어갔다.      


전날부터 뉴스에선 역대급 태풍이라고 했다. 수업 틈틈이 인터넷으로 속보를 확인하며 하굣길에 비가 쏟아지지 않길 바랐다. 수업 끝날 시간이 되자 새카만 구름이 하늘을 뒤덮어 창문 밖은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의 영화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살짝 무섭기도 하고 조금 신이 날것도 같은 날씨였다.     


“자, 오늘도 하루가 끝났네. 그런데 밖에 구름이 잔뜩 있고 어둡죠? 혹시 귀신이 나오면 어떡하지?”     


대번에 몇몇 남자아이들이 대낮에 귀신이 웬말이냐고 웃음섞인 항의를 던지고, 소심한 여자아이들은 괜시리 어깨를 움츠렸다. 그 모습이 귀여워 약간의 장난끼가 발동했다.      


“귀신이 안 무서운 씩씩한 어린이는 사랑인사 외치고 가고요, 귀신이 조금 무서운 사람은 선생님한테 오면 꼬옥 안아 줄께요.”    

  

“사랑합니다!”

내 말이 끝나자 마자 교실이 떠나가라 소리 지르고 뒷문으로 씩씪한 어린이들이 우루루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아이들을 뒤로 하고 한 덩어리의 아이들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선생님, 사랑해요.”

“귀신은 하나도 안 무섭지만 선생님은 안아주고 갈래요.”

“선생님, 저도 안아주세요.”     


설마 진짜 무서워하며 안기고 갈 아이들이 있을거라고 생각못했는데 순식간에 십여 명의 아이들이 다가왔다. 순진한 어린 영혼들이 너무 귀엽고 소중해서 나도 모르게 거리두기 따위 무시하고 두 팔 벌려 안아주었다. 두 손으로 내 허리를 꽉 안아주고 인사하는 아이들. 포옥 안기는 순간의 따스한 체온, 안겨드는 작은 몸, 서로 안아주는 적절한 물리감이 오늘 하루 교사로 잘 살아낸 증거 같아서 행복했다.


너희들 덕분에 오늘도 선생님으로 설 수 있었어. 나도 사랑해. 고마워 얘들아.


아, 이 아이들은 열한 살, 4학년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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