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안 Oct 06. 2021

200만 원 월세 사는 신혼부부



결혼은 인생 첫 독립의 시작이었다. 유럽풍의 인테리어나 모던한 미니멀리즘의 인테리어를 추구하던 부유한 상상은 결혼과 동시에 사라졌다. 신혼부부만의 감성으로 가득 채워진 고층 아파트가 아닌, 마을 변두리에 위치한 월세의 작은 집에 살고 있다. 뉴질랜드는 한국과 다르게 전세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해하는데 편의를 위해 월세라고 말했지만 더 정확히는 월세도 아닌 ‘주세’다. 한국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주세’는 말 그대로 주마다 집 세를 내는 시스템이다.


뉴질랜드에 신혼집을 구할 당시, 달에 150만 원을 넘기지 말기로 한 계획은 쉽게 따라주지 않았다. 대도시에서 두 시간가량 떨어진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집 값은 평균 십억을 가뿐히 넘기고 있는 추세였다. 평균가 십 억인 도시에서 월세 150만 원대는 온수와 냉수를 따로 틀어서 쓰는 오래된 집이거나 지게차로 이동시킬 수 있는 방 하나짜리 스튜디오였다. 이런 집에서 살다가는 불필요한 부부싸움이 잦아질 것만 같았다.


뉴질랜드에는 흔한 거주 형태가 있다. ‘플랫(Flat)’이라고 하는데 ‘쉐어하우스(Share house)’를 떠올리면 된다. 젊은 사람들이 혼자 집 세를 모두 충당하기 어려우니 여러 사람들이 한 집에 모여 살며 렌트비(Rent), (집 세)를 나눠 부담하는 방식이다. 대학시절 기숙사와 고시원을 연명하던 경력을 되살려 플랫에 거주할 의사도 있었지만 남편의 적극적인 반대로 무리해서 이백만 원의 월세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가계의 반이상을 차지하는 집 세








건축된 지 이 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이 집은 새 집 느낌이 물씬 나는 새하얀 벽지가 눈에 띈다. 낮에는 거실에서부터 안쪽에 위치한 화장실 벽까지 채광이 잘 들어온다. 뉴질랜드 집 치고는 방음도 꽤 탁월하다. 아쉬운 점은 작은 집에 비해 화장실이 쓸데없이 넓다는 것 (다른 공간을 더 넓게 만들지), 주차 공간이 너무 작다는 것(대형 SUV는 주차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래 너는 곳에 햇빛이 잘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뉴질랜드 집 특유의 전원주택에 딸린 마당 대신 빨래만 겨우 널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전부다. 앞서 나열한 것들은 사실 작은 집에 사는 단점이다.


이 집의 진정한 단점의 꽃은 ‘집 깨끗이 쓰기’다. 잘 쓰는 것도 아닌 ‘깨끗이 쓰기’가 관건이다. 집주인의 깐깐한 요구에 의해 부동산에서는 삼 개월마다 집 점검을 나온다. 점검 전 날에는 창틀부터 서랍장 안쪽까지 구석구석 걸레질을 바쁘게 한다. 남의 집 사는 서러움이 가장 큰 순간이다. 새 집을 아끼려는 집주인의 마음이 이해 가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세입자가 아닌 돈 내고 사는 관리자가 된 것 같은 기분 탓이 들기도 한다.   


손댈 새도 없이 일 억씩 훌쩍 오르는 걸 보며 걱정하는 모습이 퍽 우습다. 은행 대출에 비벼볼 만한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주위에서 집을 사는 소식에 배가 아프다. 높게 치솟는 집값에 오십은 되어서야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게 될까 두렵다.


‘서른 살에 일억 모으기’도 예전만큼 대단한 일로 치부되지 않는다. 평생 모아도 집을 살 수나 있을까 하는 마당에 그 돈으로 평소 누리고 싶은 것들에 투자하는 심리가 커지기 마련이다. 한국에서는 내 집 마련에 대한 목표가 인생 저 끝부분에 있었는데, 여기 오니 수요일마다 자동이체되는 집 세에 앞 날이 까마득해진다. 흔히 ‘욜로(YOLO)’처럼 벌고 쓰고 살고 싶어도 지금은 번 돈은 죄다 집 값에 갖다 바치는 수준이라 욜로족이 되고 싶어도 집 세가 놓아주지를 않는다.






플랫이 정답이었을까? 녹물이 나오더라도 오래된 집에 버티다가 피부가 간지러워져 참을 수 없을 때 이사를 가는 게 옳은 선택이었을까?

현재 선택한 새 집에 대한 후회는 없다. 집 전체에 곰팡이 핀 흔적 하나 찾아볼 수 없고 동네 분위기도 안전하고 아늑하다.


지금껏 후회된 적은 딱 두 번이었다.

지난달 뉴질랜드에 델타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며 락다운(lockdown) 기간 동안 일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시부모님께 생활비를 받았다. 오십만 원이라는 큰돈은 아니지만, 일주일 치 집 세를 우리 힘으로는 간단히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을 처리할 수 있었다. 이 날, 우리 부부 생활 중 가장 크게 번진 싸움이었으며, 남편은 돈 때문에 우리가 싸울 줄 몰랐다는 순진한 말과 함께 울부짖었다.


나머지 한 순간은 최근이다. 코로나가 잠잠해지고 주말에 바람이라도 쐴 겸 사십 분 걸리는 도시로 당일 여행 계획을 추진했다. 당일임에도 불구하고 경비를 계산하다가 여행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외식을 하면 그다음 주 집세를 낼 수 없었다. 여행 따위에 기분을 낼 여유도 없었다. 가고 싶던 멕시코 음식점 메뉴의 가격은 만 오천 원이었다. 부모님과 영상통화 중에 한 가정의 아내가 아닌 딸의 모습으로 돌아가 어리광을 부렸다. 멕시코 음식이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한 마디에 부모님께서 용돈 하라며 300만 원을 보내주셨다. 금액을 떠나 대학 등록금, 어학연수 비용이나 그 어떤 용돈보다 감사했다.   


생활비에 허덕이는 신혼부부가 되다니.

그래서 부모님에게 날름 도움을 받다니.


결혼 선언을 하며 당당하게 “양가 도움은 일절 받지 않겠습니다.”라고 외치던 과거에 얼굴이 붉어진다. 이 사실을 모른 척해주시며 언제나 선뜻 도움을 주시는 부모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의무만 남았다.




 현재 뉴질랜드 로또 당첨금은 200억에 달한다. 한 번도 제 돈 주고 로또를 구매해본 적이 없지만 이번에는 한 장 사려한다. 멈출 줄 모르는 집 값의 폭등에 로또 당첨이 가장 빠른 탈출구가 되어 줄 것이다. 한 순간에 억만장자가 되더라도 일단 집부터 사고 볼 것이다. 집 없 서러움은 비단 나와 남편, 우리 둘만의 문제가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민 현실, 첫 번째 난관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