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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리틀 포레스트

In New Zealand

by 조안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볼 때마다 뉴질랜드에서의 내 일상이 스친다.

지인이 내 하루를 잠시 들여다보고는 “너의 삶이 리틀 포레스트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주인공 해원처럼 떡을 찌거나 막걸리를 담그는 수준은 아니지만,

나는 내가 가진 것들 안에서 따뜻함을 끓여낸다.


바람이 살랑이는 날이면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걸터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자연 그대로의 공기가 온몸을 스쳐 지나가고

햇살이 이동하는 방향을 따라 나도 자리를 옮겨 다닌다.

살결에 닿는 바람과 햇살을 느끼며 천천히 호흡하다 보면

머릿속에 떠오르던 생각들이 흘러가고

그 자리에 자연이 주는 편안함이 채워진다.


영화 속에서 밤에 다슬기를 잡는 장면을 볼 때면

여름에 남편이 따온 성게로 성게비빔밥을 만들어 먹던 기억이 난다.

성게를 따온 건 남편이었지만

그 덕분에 나는 야생 펭귄과 함께 수영하는 경험을 했다.

야생 펭귄이라기엔 팔뚝만 한 작은 펭귄.

사람이 무섭지도 않은지 옆에서 조용히 둥둥 떠다녔다.

서로 해가 될 것도 없이 같은 바다 위를 떠다닌 순간,

그날만큼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이전 집에서는 조그맣게 텃밭을 가꿨다.

토마토, 상추, 감자, 그리고 깻잎까지

작지만 넉넉하게 자라 준 덕에

깻잎 전, 닭갈비, 김밥, 비빔밥을 자주 해 먹었다.


깻잎은 하나만 있어도 다양한 맛을 낼 수 있다.

올해도 깻잎이 무성하게 싹을 틔워

하루를 잡아 절반 이상을 솎아냈다.

서양인들은 깻잎을 잡초라고도 하는데,

정말 잡초처럼 끝도 없이 자라났다.

위로만 크지 않도록 한 움큼씩 뽑아내면

남은 줄기에서 더 많은 잎이 자라난다.

이번엔 깻잎 페스토와 깻잎장아찌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집에는 사과나무와 피조아 나무도 있었다.

여름이면 피조아가 백 개가 넘게 떨어져

하루 다섯 개씩 먹어도 집 앞엔 여전히 피조아가 쌓여 있었다.

지금은 없어서, 또 비싸서 잘 못 먹는다.

그때 더 많이 먹어둘걸.


사과는 결국 새들에게 양보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양보를 당했다.

게으른 사람은 사과를 먹을 자격이 없다고

새들이 먼저 날아와 알맹이를 다 파먹었다.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하나도 남김없이.

그 정도는 우리가 양보해 주지.

나는 피조아가 충분했으니까.


사과와 피조아의 계절이 지나가면

또 다른 열매와 다른 색의 바람이 찾아오겠지.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의 리틀 포레스트도 천천히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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