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햇빛, 그리고 하늘을 벗 삼아 책을 읽는 오후.
내가 좋아하는 고요가 조용히 찾아온다.
혼자도 둘도 아닌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질 세 명의 삶을 상상해 본다.
행복이를 아직 만나보지 못해서일까.
지금 내 삶에 깃든 이 잔잔함이 앞으로 얼마나 그리워질지 문득 생각하게 된다.
그저 깔끔하게 잘 정돈된 집에서 느끼는 만족감과,
아이가 어질러놓은 집에서 느끼는 묘한 애틋함은 어딘지 차원이 다르다.
전자가 단순한 미감에 가깝다면,
후자는 사랑이고, 그리움이고, 삶이고,
인생의 진리에 대한 슬픔이며
그저 인간 생명 그 자체의 감정 같다.
— 〈그럼에도 육아〉, 정지우
아직 나는 집의 단순한 마감과 질서를 더 챙기고 싶은 사람이다.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며 최소한의 살림살이로 신혼을 꾸며왔다.
아기 장난감 하나 사지 않았는데도 늘어난 짐을 바라보며,
언제쯤이면 다시 정리해 팔고 내 공간을 되찾을 수 있을지만 먼저 떠올린다.
행복이가 태어나면 과연 작가의 말처럼,
잔뜩 어질러진 집을 보며 그것을 사랑으로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이의 탄생이 나의 삶 자체를 바꾼다는 말이
아직은 전혀 실감 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
카페 손님에게서 직접 뜨개질한 행복이 양말을 선물로 받았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작은 생명을 위해
사람들은 이렇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축복을 건넨다.
태어나기 전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아이라는 사실이
이런 순간들 속에서 조금씩 실감 난다.
아기가 찾아오고 남편과 나 사이의 삶도 더 행복해져서
태명을 ‘행복이’로 지었다.
그 이름처럼 행복이는 이미 여러 행복을 데려오고 있다.
지금의 고요가 다시 돌아오기까지,
그 시간이 1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모를 미지의 나날들을 기약하며
나는 이 순간을 조금 더 누리려 한다.
행복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지금의 고요와는 전혀 다른 결의 감정을 배우게 될 테니까.
아마도 내가 가장 좋아하게 될 시간은
고요 속에 머무는 시간이 아니라,
행복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될 것이다.
삶의 모든 순간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겹겹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다.
그러니 이 고요도 앞으로 찾아올 소란스러움도
모두 내가 사랑하게 될 나의 삶이다.
이 시간이 그리워질수록,
나는 그만큼 이 순간에 깊이 몰입해 사랑했을 것이다.
고요 대신 찾아올 무언가에 대해,
나는 이미 조용하고 단단한 기대를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