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을 비축하는 밤
세 달 남은 출산 예정일은 나의 자유를 앗아가는 시한부이기도 하다.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큰 축복으로 다가왔지만, 매일이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조용히 책을 읽거나, 겉옷만 걸치고 아무 때나 외출할 때, 그리고 그저 침대에 편히 누워 있을 때에도 문득 이런 호사를 누리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슬펐다. 지금 누리는 것들을 잃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 아기가 태어나고 나면 과연 상쇄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며 더욱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한국에서 K-장녀로 태어났지만, 엄마의 육아 가치관 덕분에 첫째가 짊어질 부담감은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결혼하고 나서도 연하의 남편을 만났고, 단단한 기둥 같은 남편에게 많이 의지하며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누군가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일은 태어나서 아직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고 앞으로 태어날 행복이를 만나는 날이 무서운 것은 절대 아니다. 아기는 태어난 순간부터 누구보다 사랑스럽고, 내가 사랑할 존재임이 틀림없다. 뱃속에 있는 시간이 한 달, 두 달 늘어날수록 만져보지 못했음에도 이미 나의 모든 생각은 아기로 향해 있다. 다만 행복이가 아직 눈앞에 없어서인지, 앞으로 턱없이 부족해질 내 시간을 향한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질 뿐이다.
자유에 가까웠던 나의 삶은 곧 뒤바뀔 예정이다. 자유로운 시간을 손에 쥐고 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마냥 두려워하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하나라도 더 비축해 두겠다는 마음으로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다. 거창한 해외여행이나 호화로운 계획은 없다.
햇살 좋은 날 피크닉 가기, 바닷가에 가서 조용히 파도 소리 듣기, 카페 가기, 재즈와 함께 독서하기, 라이브 뮤직 들으러 가기, 일요일 마켓 가기. 가장 나답게 몰입할 수 있는 시간, 사소하지만 분명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러던 중 우리 집에서 가까운 와이너리에서 밴드 공연이 열린다는 소식을 남편이 찾아왔다. Drax Project. 네이버에 검색해도 자세히 나오지 않는 뉴질랜드 밴드였다. 당연히 나도 잘 모르는 밴드였지만, 다행히 귀에 익숙한 곡들이 몇 개 있었다. 에드 시런 콘서트에 가려면 300불을 내고 오클랜드까지 가야 했는데,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집에서 20분이면 콘서트장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들뜨게 했다.
전 좌석 매진이었던 에드 시런 콘서트와 달리 당일까지 티켓이 판매되던 소규모 공연이었지만, 내 마음만큼은 오아시스 밴드를 기다리는 순간 같았다. 이날의 콘서트는 단순한 외출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에게 허락한 작은 반항 같았다.
저녁 일곱 시 시작 공연은 날씨도 딱 좋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날 네이피어는 가장 무더운 한 주의 한가운데였다. 하루 종일 30도를 넘겼고 일 끝나고 편히 쉬다 출발하려던 계획과 달리 더위를 먹고 널브러져 있었다. 가기 전부터 기진맥진한 나를 보고 남편이 걱정했지만, 쉽게 포기할 리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도착한 와이너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곳이었다. 내부는 보지 못했지만, 짙은 녹색의 포도밭을 걷기만 해도 아까 먹은 더위가 금세 가시는 기분이었다. 공연 장소는 잔디밭이 층층이 이어진 계단형 구조였다. 한국의 별마당 도서관처럼 으리으리하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더 우리가 좋아하는 크기였다. 너무 크면 벅차고, 너무 작으면 답답하다. 우리는 적당한 공간에 잘 왔다고 생각했다.
햇볕이 적당히 드는 곳에 돗자리를 깔고 앉았다. 덥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바깥공기는 시원했다.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진 여자 가수가 노래를 너무 잘해서 놀랐다. 이곳의 일상에 익숙해져 살다 보면 당연한 것에 놀라게 되는 순간이 종종 생긴다. 해 질 무렵의 수평선을 바라보며 시야에 들어오는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헤드폰을 쓰고 온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
한 손에 담배를 들고 자유롭게 춤추던 여자
다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리듬을 타던 학생들
많아야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쌍둥이 손녀를 데리고 온 할머니와 할아버지
그 장면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임신하느라 조용히 밀어 두고 있던 감정들, 살아 있다는 감각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임신으로 몸이 달라졌고, 앞으로 시간은 전보다 턱없이 부족해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임산부라서, 아기 엄마가 되어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사람처럼 만든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앞으로의 인생이 무색무취해질까 봐 전전긍긍했던 마음은 내가 아직 겪어보지 않은 소문에 불과했다. 부쩍 나온 배를 부여잡고 시끄러운 공연장을 찾은 것처럼 아기가 태어난 뒤에는 아기 손을 꼭 잡고 함께 가면 되는 일이었다.
일곱 시에 시작한 콘서트는 솔로 무대와 다른 남자 밴드의 공연을 거쳐, 아홉 시 반이 되어서야 주인공 밴드가 등장했다. 임산부에게 그 시간은 이미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너무 피곤하면 집에 가야지 생각하던 찰나, 도파민이 팡팡 터지는 공연이 시작되었다. 자유롭게 리듬을 타는 기타리스트, 흐릿하지만 강력한 드러머, 베이스와 건반, 그리고 보컬이 부는 색소폰까지 단 하나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무섭도록 완벽한 공연이었다.
집에 일찍 돌아가기는커녕 흥을 주체하지 못해 바닥에 깔아 둔 돗자리를 뒤집어쓰고 방방 뛰며 음악을 즐겼다. 이날만큼 제대로 놀아본 게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내가 마신 것은 레모네이드 한 잔 뿐이었지만, 술에 잔뜩 취한 것보다 훨씬 신나게 춤추고 놀았다. 조용하고 잔잔한 일상을 거느리다 가끔씩 이렇게 무모한 달콤함을 한 번 들이켜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이가 생기면 지금의 인생이 사라진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가 주인공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힘들지 않을 거라는 말도 아니다. 분명 힘들고 어렵겠지만, 그 안에서도 나는 여전히 내 삶을 누릴 것이다. 부쩍 나온 배를 안고 다녀온 이 밤처럼 자유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나와 함께할 테니까.
오늘 콘서트에서 느낀 이 낭만이 부식되지 않도록.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육아라는 세계 앞에서 겁을 먹고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이 이 낭만을 대신하지 않도록.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공연장에서 묻어온 냄새가 아직 옷에 남아 있었다. 오늘의 나는 자유를 잃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 함께 갈 손이 하나 더 생겼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