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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안 Sep 17. 2021

할머니를 닮아가는 엄마를 바라보며

<다시 그곳에>

“아이고, 늬 할머니도 할아버지 답답해 죽겠다고 그렇게 하소연을 하셨는데. 근데 나도 어쩜 엄마랑 똑같이 그러고 있냐. 어디다 말할 데도 없잖아. 너한테 밖에.”


요즘 거의 매일 우리 집으로 출근하시는 엄마와 같이 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엄마의 넋두리 듣는 게 일상이다. 아빠와 나눈 시시콜콜한 대화 한 마디 한 마디를 눈앞에 보듯 성대모사까지 하며 이야기해주는 엄마. 그 덕에 난 집에만 있어도 아빠를 매일 만나는 기분이다. 가뜩이나 우리 집 갓난쟁이 돌보랴, 다 늙은 딸 살림해주랴 하루하루가 힘든 엄마 속을 왜 그렇게 썩이는지 듣는 나도 열불이 나고 답답해질 때가 많다. 그렇게라도 나한테 풀 수 있단 게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이 나이까지 여전히 엄마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나란 딸도 참 구제불능인 것 같단 생각에 미안함이 차오르곤 한다. 난 대체 언제 엄마로부터 진정한 독립을 할 수 있을까?  


외할머니를 엄마처럼 따르던 내가 엄마에게서 할머니의 모습을 보는 건 무척 반가운 일이기는 하다. 할머니의 음식 솜씨를 그대로 닮은 엄마 덕에 지금까지도 엄마가 매일 해오는 맛난 반찬으로 연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할머니가 해주는 음식이 젤 맛있어!” 

7살 첫째 아이는 엄지 척을 날리며 밥을 먹은 지 오래다. 엄마는 밥 차려줄 때 너무 정성이 없다며 할머니처럼 정성껏 해달라는 단비는 아마 결혼하면 생각나는 게 엄마가 아니라 외할머니가 해주신 밥 이리라. 


어릴 적 외갓집에 가면 늘 밥상에 올라오는 반찬이 두 가지 있었다.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담북장과 사위가 좋다는 걸 알고 우리만 가면 늘 만들어 주셨던 깻잎 장아찌다. 담북장은 지금 단비가 제일 좋아하는 찌개고, 깻잎 장아찌는 외할머니 맛이라며 내가 참 맛있게 먹는 반찬이 되었다. 가끔은 깍두기를 넣고 끓이는 엄마표 담북장은 전혀 맵지 않으면서도 진한 구수함이 단비 입맛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깻잎 장아찌는 깻잎 한 장 한 장 양념장이 푹 베어 짭조름하면서도 매콤 새콤 감칠맛이 딱 밥도둑이다. 어릴 땐 깻잎 줄기 떼는 게 귀찮기도 하고 잘 못해서 엄마가 늘 손으로 한 장씩 떼어 내 밥에 올려 주셨더랬다. 하루빨리 엄마한테 만드는 법을 배워야 할 텐데 마음만 굴뚝같고 몸이 당최 안 따른다.   


엄마, 아빠를 제외하고 단비가 유일하게 반말을 하는 어른 역시 외할머니다. 한 번은 단비에게 “왜 상도동 할머니한테만 존댓말 쓰고 할머니한텐 안 쓰는 거야?”라고 물었더니 “할머니는 친하잖아.”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우리 엄마는 기분이 좋아져서 “그래 그럼.” 하고 넘어갔다나. 만날 그 먼 직장 어린이집으로 단비를 데리러 가고 내가 퇴근할 때까지 저녁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일을 몇 년 동안 했으니 외할머니랑 찰떡이 안 될 수 있으랴. 나 역시 유일하게 외할머니에게만 반말을 했는데 돌쟁이 때 외갓집에서 살면서 허구한 날 할머니 등에 업혀 지냈으니 그럴 만하다. 


Natalia Chenysheva <The Return>


나탈리아 체르니셰바의 <다시 그곳에>는 주인공이 자신의 고향집을 방문해 할머니가 해주시는 맛있는 수프를 먹으며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는, 짧지만 애틋한 그리움을 가득 담은 애니메이션이자 글 없는 그림책이다. 키가 큰 주인공이 그리웠던 수프 냄새를 맡으면서 다시 꼬마의 모습으로 작아지는 장면에 흘러나오는 아코디언 소리가 경쾌하다. 작아진 꼬마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할머니의 모습이 어찌나 푸근하고 정겨운지 우리 외할머니 생각이 몽글몽글 피어난다. 


“할머니이~~”

외갓집에 들어설 때면 할머니는 늘 두 팔로 나와 동생을 한 번에 꼬옥 안아 주셨다. 풍채가 있으셨던 할머니의 푹신푹신한 뱃살에 폭 안겨 할머니 냄새를 맡으며 오래도록 서 있곤 했다. 하지만 내가 점점 자라서 할머니보다 키가 커졌을 무렵부터 할머니는 우리를 서서 맞이해주시지 못했다. 침대에 누워 계신 할머니에게 달려가 인사를 할 때면 할머니는 힘든 얼굴이었지만 우리를 보고 반가운 웃음을 지어 주셨다. 생각해보니 엄마가 지금 내 나이 때 할머니가 간경화로 돌아가셨으니 엄마는 엄마를 참으로 일찍 떠나보냈구나 새삼 깨닫게 된다. 그래도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가장 의지했던 큰 딸 우리 엄마. 눈 감으신 그날까지 엄마는 할머니가 계신 병원을 매일 오가며 고3 수험생이었던 나까지 살뜰히 챙겨 주었다. 정말 엄마는 그런 힘든 상황을 어떻게 다 감당했을까? 엄마가 없으면 직장 생활도, 살림도 잘 못하는, 마냥 아이 같은 나 같은 딸은 상상조차 안 된다. 


그런 엄마에게 언뜻 할머니 냄새가 나는 걸 느끼거나 할머니 손처럼 주름이 많이 진 손등을 보았을 때, 또 모습에서나 말투에서나 할머니를 점점 더 닮아가는 우리 엄마를 보면서 서글퍼질 때가 있다. 하지만 엄마보다 한 뼘이나 더 커도 여전히 엄마 앞에선 한없이 작은 꼬마 아이인 나. 딸아이의 교복 셔츠를 다리려고 해도 “니가 뭘 해.” 하면서 엄마에게 뺏기곤 한다. 단비가 커서 지금의 엄마처럼 나도 손주들을 돌봐주고 살림도 척척 해줄 수 있는 친정 엄마가 되어 줄 수 있을까? 단비가 일을 하러 나갈 때든 출산하고 몸이 힘들 때든 언제나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엄마가 말이다. 지금도 잘 못하는데 그 때라고 할 수 있겠나 싶다. 엄마가 외할머니를 닮아가듯 나도 외할머니가 되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엄마가 젊은 시절엔 어떻게 해도 어설퍼 포대기를 안 썼다고 하지만 지금은 손주를 만날 업고 재워주는 포대기의 달인이 된 것처럼. 마음 한편에선 뭐든지 어설픈 똥손 허당 엄마 밑에서 자란 단비는 더 독립적인 어른으로 자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도 품어본다. 그래서 굳이 내가 챙겨주지 않아도, 혹은 챙겨주지 못해도 자신만의 생존법을 터득해 가지 않을까 하는. 나 역시 손주 교복을 다려주는 대신 손주에게 좋은 그림책을 읽어주는 외할머니가 되고 말이다. 물론 단비가 엄마가 될 때쯤엔 고된 돌봄 노동에 친정 엄마를 갈아 넣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테고 말이다. 


물론 엄마는 그 노동을 너무도 기꺼이, 요즘이 당신 인생의 골든타임 같다면서 즐겁게 하고 계시다. 며칠 전엔 어느 장례식장에서 또래 권사님을 만나서 할머니 육아에 대해 한참이나 공감 넘치는 이야기 한마당을 펼치고 오셨더랬다. 엄마는 늘 아무리 좋은 돌보미라도 아이를 잘 먹이고 씻기고 재울 순 있을지언정 절대로 잘 놀아주기까지는 못한다며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잘 놀아줄 수 있는 건 조부모가 유일하다는 평소의 생각을 피력하셨다고 했다. 그리하여 그날의 결론은 자식들이 사회로 나가서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당신들은 그들의 아이를 잘 돌보는 게 시대의 사명이라는 것. 마치 보내는 선교사처럼 말이다. 하지만 절대로 손주 돌봄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자발적 섬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같은 돌봄 노동이어도 예전의 시집살이처럼 억지로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요즘엔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하는 엄마. 아무렴 왜 힘이 안 드시겠나. 저렇게 잠시도 쉬지 않고 오르락 내리는 돌쟁이를 보고 있는데 말이다. 그저 미안하고 감사할 뿐이다. 


외손주에 대한 무한한 사랑 역시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일 게다. 나도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일 년 남짓 외갓집에서 자랐다. 곧바로 동생을 임신한 엄마가 어떻게 갓난아기까지 돌보랴 싶어 할머니가 나를 아예 데려가셨던 것. 거기서 이모와 작은 삼촌의 사랑까지 듬뿍 받으며 엄마의 빈자리를 못 느끼며 자랐으리라. 그러니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나도 마치 엄마를 잃은 마냥 오래도록 힘들었겠지. 


우리 아파트 놀이터 앞에 라일락이 흐드러지게 폈다. 라일락 향기가 코 끝에 닿을 때마다 한밤 중 독서실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학생 시절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며 서있던 엄마를 만나 아파트 사이 골목의 향긋한 라일락 나무 길을 두런두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걸었던 봄밤. 그 시절에도 우리의 대화는 술 취해 들어온 아빠와 사춘기를 진하게 겪는 동생에 대한 한탄 섞인 뒷담화가 주를 이뤘던 것 같다. 삼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도 참 한결같네. 내가 엄마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줄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 라일락 향기가 감도는 놀이터에서 손녀에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태워주는 외할머니가 된 엄마. 다른 건 다 닮아도 할머니처럼 아프지 말고 건강히 장수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단비가 할머니의 담북장을 오래도록 맛보고, 할머니의 따스한 품을 오래도록 느끼며 자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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