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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혜경 Dec 18. 2024

경찰 아저씨가 무서워요!

친절한 싱가포르 경찰!

"아빠, 살려주세요. 여기 경찰 아저씨 있어요!"


이사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이 울면서 집으로 뛰어 들어왔다.

"왜 그래 아들? 경찰 아저씨가 뭐라고 하셨어?"

"아니요, 저기 옆에 경찰서가 있어요. 아빠, 여긴 위험한가 봐요."

"괜찮아 아들아!  경찰 아저씨는 무서운 사람이 아니야."

"아니에요, 아빠. 이스라엘에서는 경찰들이 총을 들고 다녔잖아요. 무서운 사람들이에요. 오늘 차에서 내리는데 경찰 아저씨가 서 있어서 너무 무서워서 집으로 달려왔어요."

아빠는 아들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들은 이스라엘과 요르단에서 봤던 경찰들의 모습이 마음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다.

이스라엘에선 매일 거리에 군인과 경찰이 가득했다.

총을 메고 주위를 날카롭게 살피던 그들의 모습은 아들에게 전쟁의 그림자처럼 다가왔다.


어느 날, 우리 가족이 이스라엘 엘랏 국경을 넘을 때,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며 총을 둔 군인들이 달려와 사람들을 빨리 피신을 시키고 로봇 같은 것들을 여럿 작동하며 폭탄을 찾는다고 건물 전체를 수색하였었다.

어른인 우리도 놀라 힘들었는데 아이들은 어땠을까? 그리고 아무런 일도 아니었지만,

그날 아들은 너무 놀라며 무서워했고 그날 이후 총과 경찰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아들은 무서워했었다.




우리 집은 아파트 1층이었고 코너를 돌면 바로 경찰서가 보였다.

경찰들이 순찰을 돌 때마다 아들은 창문 너머로 그들을 몰래 살펴보곤 했다. 경찰에 대한 무서운 기억은 부모의 설명으로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어느 날, 남편은 떼를 쓰며 가지 않겠다는 아들을 설득해 경찰서를 방문했다.

남편은 선물을 사들고 경찰서를 찾아갔고, 나도 걱정이 되어 뒤따라갔다.

아들은 처음 보는 경찰서, 낮선공 간의 가운데 멈춰 서서 아빠 손을 잡고 긴장하며 서있었다.

남편은 과일과 과자를 들고 경찰서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경찰들에게 웃으며 말했다.


"저희 가족은 중동에서 살다 왔는데, 아들이 그곳의 상황 때문에 경찰을 많이 무서워해요. 경찰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고 싶어서 왔습니다."


경찰서 안의 경찰 분들이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이해한 듯이 한 분이 웃으며 다가와 아들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꿇으며 아들 앞에 앉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우리 경찰은 주민을 돕고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존재한단다. 네가 살았던 그 나라에는 전쟁이 있었으니, 경찰들이 총을 들고 다닐 수밖에 없었을 거야.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걱정할 필요 없어. 우린 총 대신 이렇게 방망이를 가지고 다닌단다."


경찰은 자신의 장비를 보여주며 아들이 직접 만져보도록 허락했다.

아들은 그 손전등을 조심스레 만져보다가 얼굴에 작은 미소를 지었다.

아들은 처음으로 경찰관의 눈을 마주쳤다.  

경찰의 미소와 부드러운 목소리에 조금씩 마음이 풀리는 듯했다.

경찰과 함께 음식을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들은 서서히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사실 싱가포르 경찰은 우리가 살던 파키스탄이나 이스라엘이나 중동의 상황과는 달리 상당히 다른 분위기였다. 집 가까이 경찰서가 있었고, 교통이나 법치 국가로서의 모든 과정들이 친절했다.

잠시 머물렀던 나라이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우리가 지향하는 경찰의 모습을 경험 했다.




그날 이후, 아들은 점차 경찰관들에게 익숙해져 갔다.

경찰관들의 미소와 친절이 그의 두려움을 서서히 녹여주었다.

집 앞 경찰서 근처에는 느긋한 고양이들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

경찰관들이 순찰을 나갈 때면 고양이들은 얌전히 길을 비켜주었다.

처음엔 창문 뒤에 숨어 경찰들을 바라보던 아들이 어느새 그 고양이들에게 참치캔을 주며 경찰관들에게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아이들이 싱가포르의 땅 냄새를 맡으며 안정을 되찾아 갔다.


언젠가 다시 떠나야 하는 우리 가족에게 싱가포르의 편안한 집, 그것도 경찰서 옆이라는 특별한 장소를 허락하셨다. 아이들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말이다.


그동안 우리는 선교사로 살아가며 겪은 일들이 두 아이의 정서에 얼마나 깊은 불안과 두려움을 심어주었는지 미처 깨닫지 못했었다.

이스라엘에서의 경험은 그 땅을 떠난다고 해서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부모조차 알지 못했던 아들의 내면 깊은 곳에 남아 있던 어둡고 불안한 그림들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고, 경찰서를 통해 그 마음을 회복시켜 주셨던 것이었다.


다시 중동으로 떠나야 하는 여정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세밀하게 돌보고 계심을 믿었기에 마음 한편이 평안했다.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도 두 아이의 정서를 살피고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며 감사함이 마음 깊이에서 올랐다.


부모로서 자녀들의 안정된 삶을 위해 매 순간 고민하고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결국 중요한 진리는 언제나 같았다.

어떤 상황에 놓이든 가족이 하나 되어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소통하는 것,

그리고 함께 어려움을 풀어가는 것이야 말로 우리 자녀들에게 가장 안정된 환경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 놀라운 것은 누구도 계획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이미 아시고 친절한 나라인 싱가포르의 경찰서 옆으로 이사하게 하셨다는 사실이다.


그분의 섬세한 계획 덕분에 우리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 깊이 자리했던 두려움들이 서서히 씻겨 나갔다. 이처럼 세밀하게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우리 가족에게는 무엇보다 가장 큰 안정과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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