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싱가포르 사람 맞지? 그런데 친구들은 내가 한국 사람이라며 싱가포르 사람이 아니래요!”
유치원을 마친 아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내 품에 안겼다.
아이의 속상한 마음이 전해져 나도 마음이 아팠다.
“누가 그런 말을 했어?”
“친구들이요. 내가 싱가포르 사람이라고 했더니, 다들 ‘아니야, 넌 한국 사람이야!’라고 소리쳤어요. 엄마, 우리 싱가포르에 살고 있으니까 싱가포르 사람 맞잖아요?”
아들의 혼란스러운 눈빛을 보며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말했다.
“아들, 우리는 한국 사람이야. 하지만 지금은 싱가포르에 살고 있지? 그래서 싱가포르 사람처럼 말도 배우고 문화도 배우며 함께 살아가는 거란다.”
아들은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작은 미소를 지었다.
“ 아들! 네가 앞으로살아야 하는 세계의 모든 땅과 사람들을 사랑하는것은 참 소중해. 그렇게 살다 보면 너는 세상 어디든지 가서 살 수 있을 거야, 신나지 않니?”
선교를 하는 아빠 엄마를 만나 파키스탄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이었다.
여러 가지 상황으로 한국인들이 많이 없는 나라들을 가서 일을 할 때마다 아이들에게
'이제 우리는 이 나라 사람들과 어울려 이나라 사람으로 살아야 한단다'
라고 했던 말들을 아들은 확실히 믿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 품 안에서 울고 있는 아들을 꽉 안아주었다.
'그러게 말이다. 아들아 우리는 한국인인데 가는 곳곳마다 한국인들이 없었는데, 이 싱가포르에서는 많은 한국인들을 만났구나. 그래도 다행이다 아들아! 네가 한국인인 것이 맞단다. 우리는 싱가포르에 사는 한국인인 것이지'
조금 마음이 가라앉았는지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 아들! 우리는 한국인이야,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일을 시키셔서 한국에서 살지 않고 어려운 나라와 아픈 사람들을 위해 이렇게 다니고 있는 거야. 우리 아들이제 많이 커서 엄마말 이해 하지? 그래서 우리가 싱가포르에서 살 때는 싱가포르 사람들과 잘 살아야 하고 싱가포르 사람처럼 말도 배우고 문화도 배우고 해야 하는 거야. 아들아 그렇게 사는 것이 우리 가족의 사명이란다"
"엄마 나는 싱가포르 사람이 좋아 그리고 한국 사람도 좋아 나는 모두모두 좋아"
며칠 후, 한 친구가 우리 가족에게 싱가포르 독립기념일 행사 초대권 4장을 주었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큰 연례행사라 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친구의 남편이 군인이라 특별히 구해준 것이었다.
그날, 우리는 싱가포르의 상징색인 주황색 모자를 쓰고 선물 가방을 들고 행사장에 들어갔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싱가포르 국가를 따라 부르며 분위기에 푹 빠졌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행복해했다.
그날 밤, 나는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아들의 마음속 혼란을 헤아려 주시고, 우리가 어디에 있든 그 나라를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은혜에 감동했다.
선교사로서 여러 나라를 다니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우리 가족에게 하나님은 넉넉한 마음을 가르쳐 주셨다.
운동장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뜨겁게 사랑했던 그 시간은 우리 가족에게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정서적인 영역도 너무 잘 아셔서 때에 따라 풀어주시는 사랑을 깊이 경험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