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 강을 내리니...

관광비자 2 탄

by 천혜경

내 삶에 사막이 있다면 어떤 경우 일까?

아마 지금 우리의 상황이 아닐까 생각했다.


매달 한 달 혹은 세 달씩 비자를 갱신하며 사역을 이어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뜨거운 태양에 물 한 모금 얻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 마음으로 매일 기도했다.


공항 이민국에서 주는 몇 개월 혹은 몇 주의 관광비자의 기간을 매일 카운트다운하며 사역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오늘의 불안정 속에서 내일을 믿는 내적인 강인함이 필요했다.


내 안에 더 힘들었던 것은 '이 나라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존재가 되어 있는 우리 가족'이라는 거절감이었다.

주위 사역자들의 눈에서도 레이저 광선처럼 '왜 너희는 비자가 승인되지 않았지?'

라는 소리가 메아리쳐 내 귀에 들려오는 듯했다.


무엇이 모자라서, 아니면 자격이 없어서일까?

물론 우리가 영어도 어눌하고 모든 것이 세련되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고 본인인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깊은 불안, 수치와 혼동이 나를 누를 때는 하루 종일 문 밖에 나갈 힘도 없었다.

누구를 만나서 무엇을 할 용기가 없어졌다.

하루 종일 덜덜 거리며 돌아가는 에어컨 소리를 들으며 작은 침대 위에 축 늘어져 누워 있었다.


'비자'가 내 삶의 주인이 된 것처럼 착각하며 며칠을
뜨거운 사막 모래 위에 시체처럼 쓰러져 지냈다.


그렇지만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죽을 만큼 힘들었던 초창기 파키스탄의 상황과는 천지 차이이기에 그나마 기쁨을 곧 회복할 수 있었다.

기도하면서 우리 부부는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저 '하나님이 진행하신 다는 뜻'이니까 그저 받아들이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남편이 강의 차 인도네시아에 갔다가 들어오는데 비자를 한 달만 받았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새로운 비자를 받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결국 한 달 후에는 비자를 받기 위해 다른 나라로 나가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상황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사역을 지속해야 하는지 아니면 멈춰야 하는지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로 느껴져 왔다.


그때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사역하던 남동생의 지나가는 말로 한 말이 문득 떠올랐다.


"누나! 혹시 비자나 어려움이 있어서 나와야 한다면 여기로 오세요. 여기 일도 해 주시고 좀 계셔도 되니까 여기로 오세요 누나!"

동생의 따뜻한 말에 우리는 그나마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 누군가의 진심 어린 환영을 받는 것은 큰 위로가 되었다.




리더들과 회의를 하고 우리 가족이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세 달 동안 지내고 들어오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갑자기 며칠 만에 우리의 삶에 많은 결정을 하였는데 속으로 떨리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더 놀라운 것은 내 마음 안에 깊은 설렘이 슬그머니 살아나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는 아직 사막을 벗어나지 못했다.


또 하나 큰 문제는 4명의 비행기 표를 구하는 일이었다.

여행 경비와 집세까지 생각하면 재정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우리는 간신히 모아둔 돈으로 비행기 표를 반도 채 안 내고 미리 예약하고, 나머지 금액은 며칠 뒤에 내기로 여행사와 약속했다. 이제 이 모든 사막의 여정에 함께 하고 계신 하나님이 남은 우리의 숙제를 도와주셔야 했다.


방금 사막을 벗어난 것 같았는데...

계속 연장되는 사막을 우리는 걸어야 했고, 뜨거운 태양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인내의 시간이 주어졌다.


한 거 풀이 벗겨지는 경험을 하고
내 안에 내적인 힘이 생겨서
멋지게 두 번째 거 풀을 걷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억지로 괜찮은 척 불안한 눈물을 삼키고 하나님께 매달려 며칠을 지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매일매일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리의 상황을 알고 있던 지인들이 찾아와 격려와 재정적인 도움을 받게 되었다.

특히 우리 두 아이를 아껴주시던 한 집사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분은 아이들을 위한 작은 선물과 함께 헌금을 전해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왜 우리 선교사님 댁에 비자를 안 줬을까요? 정말 속상하네요.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지내고 오세요. 동생이 있으니 더 잘됐네요. 하나님이 그 나라에서 두 분에게 준비하신 일을 어떻게 진행하실지 기대돼요. 저희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우리의 상황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예언하듯이 또박또박 '기도와 믿음으로 밥 먹고 사는 선교사'를 오히려 위로해 주었다.


완전 사막에 나뒹굴어 헤매고 있는 나의 뒤통수를 힘껏 내리 치는 그 따뜻한 말에 몸과 마음이 먹먹해졌다.


어떻게 가족도 아닌 분들이, 아니 어쩌면 가족보다 더 따뜻하게 우리를 품어주실 수 있을까?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사막 한가운데서 이런 만남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그 순간 다시 한번 느꼈다.


사막 한가운데서 눈물로 채워진 강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 강물은 마른땅을 적시듯 내 깊은 갈증을 채워 주었다.


난 무엇에 메말랐었는지 너무 나약하고 양은냄비처럼 손바닥 뒤집듯이 살아가는 나를 다시 한번 만났다.

너무 부끄러워 내 손에 주어진 티켓 네 장을 붙들고 엉엉 울었다.

그리고 난 또 종알 거린다.


" 하나님 조금만 일찍 알려 주셨다면 내가 하나님 원망 안 했을 건데... 꼭 이렇게 사막에 나 뒹굴 때까지 그냥 두시니까 내가 그러잖아요... 미안해요! 제가 미안해요. 제가 하나님 사랑하고 믿는데 매번 왜 이럴까요?

이번에도 비행기 티켓만 주셨는데 제가 불안해하지 않을게요. 남아공화국에 가면 또 뭔가 있겠죠? 그죠?"


우리 부부는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두 아이와 함께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의 시간이 어떤 도전과 배움의 기회로 다가올지 기대되었고, 이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하실 일을 떠올리며 살짝 마음이 두근거렸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여정은 단순히 비자를 해결하기 위한 임시방편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만난 현재의 사막에서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시는 사랑의 만남을 통해 사막에 강물이 만들어지고 풍성하게 채워지는 기적의 추억이 되었다.


하나님은 사막에서도 강을 만드시는 분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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