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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혜경 Dec 11. 2024

싱가포르 HDB 아파트

기적의 화려한 추억

싱가포르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HDB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HDB 아파트는 싱가포르 주택 개발청에서 제공하는 공공 주택으로 싱가포르의 약 80%가 거주하는 HDB 아파트는 젊은 선교사들도 살 정도로 보편적이었다.

내가 친구들이 부자라고 부를 때마다 그들은 이 아파트를 99년을 빌린 것이기에 하나님 나라 갈 때까지 살 수 있는 집이라고 한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싱가포르는 참 신기한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 가족은 선교단체가 제공하는 아파트에서 싱글 선교사 두 명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했다.

작지만 아늑한 두 개의 방을 사용하였고 그 공간은 단순한 공간을 넘어, 

우리 가족이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언어와 문화를 배우며 살아가는 중요한 터전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우리가 살고 있던 건물을 비워줘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처음에는 그 통보가 현실로 와닿지 않았다.

몇 달 안에 다른 거처를 찾아야 한다는 말은 머릿속에서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은 현실이 되었고, 우리의 새로운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는 관광비자로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현지에서 집을 구하는 과정이 법적으로 복잡했고,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선교단체도 집을 구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 같이 어울려 살고 있던 해외에서 온 선교사들을 위해 어떤 것을 해줄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반짝 거리는 아파트가 이렇게 많은 싱가포르에서 우리 가정만의 집을 구해야 하는 시점이 되었다.

얼마 전 이집트로 갈 것이라고 결정하고 리더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과정이었지만 동시에 떠나기 전까지 잠시 살아야 하는 집을 찾아야 하는 시급한 상황이 되었다.  


그동안 우리 선교 단체가 이방인 선교사들에게 베풀었던 은혜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었다.

작은 아파트의 방 두 개에 살며 여러 나라 사람들과 같이 알콩달콩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행복했었던 삶이었는지 가슴 깊이 느꼈다.


그냥 이렇게 살고 싶은데!
우리는 굳이 우리 가족만의 집이 필요 없는데...



집을 비어 주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면서 우리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갔다.

주변의 선교사들이 한 가정씩 머물 수 있는 집을 마련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진심으로 그들을 축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의 상황을 떠올리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리도 곧 집을 구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집을 예비하셨을까?'


그런 고민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드디어 우리가 살고 있던 건물을 비워줘야 하는 날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을 구하지 못한 우리는 급히 한인교회에서 방 하나를 얻어 임시로 머물게 되었다.

너무 감사한 것은 한인교회에서 우리 가족의 상황을 들으시고 무상으로 머물러도 된다고 했다.  그렇지만 장기로 머물 수는 없었다.


싱가포르에는 많은 집들이 있었지만, 문제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집세에 맞는 집이 없다는 점이었다. 한 달이 지나도록 적합한 집을 찾지 못하자, 우리는 점점 지쳐갔다. 아이들도 좁은 공간에서 불편해했고, 하루빨리 안정된 환경으로 옮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던 중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우리와 함께 사역했던 한국 선교사님 이 갑작스럽게 연락을 주신 것이었다.


“저희가 1년간 해외로 나가야 해서 집이 비게 되는데, 이야기를 들으니 두 분이 집이 필요하시다고요? 사용하시겠어요?”


상대방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집세를 제시하며, 집 안의 가구와 물건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소식이었다.


우리 가족은 그 소식을 듣고 곧바로 집을 보러 갔다. 집에 들어선 순간, 우리는 마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구부터 주방 용품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우리는 오랜 시간 공동체 생활을 하며 아무 살림이 없었다. 그저 20kg의 짐만 들고 다니는 삶이었다.  하지만 이 집은 우리의 필요를 하나도 빠짐없이 채워주는 완벽한 공간이었다.


이삿날,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모든 걱정과 불안이 눈 녹듯 사라졌다. 이 집은 단순히 우리의 머물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심한 배려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그 집은 바로, 싱가포르의 상징적인 HDB  1층 아파트였다.

 


그 집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행복한 감사와 은혜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서 평온한 일상을 되찾았고, 아이들도 안정감을 느끼며 생활할 수 있었다. 

비록 임시로 머물게 된 집이었지만,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주어진 일에 다시 열심히 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손길은 언제나 우리가 가장 필요할 때 다가왔다. 

그 집에서의 생활은 단순한 쉼과 안식을 넘어,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준 살아 있는 기적이었다.


삶의 모든 과정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가장 힘들고 어려움 속에서 길을 잃은 듯한 상황이 올 때마다, 하나님이 진행하시는 기적 들은 언제나 우리를 가장 멋진 최선의 자리로 이끄셨다.

 

싱가포르에서의 HDB 1층 아파트, 그 집은 우리에게 단순히 물리적인 거처 이상의 의미를 주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보시고 가장 적절한 상황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확신했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우리 가족만의 방세개짜리 아파트의 삶을 살아본 하나님이 주신 기적의 화려한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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