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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혜경 Nov 27. 2024

IMF 위기 때 만난 천사들

위기를 사랑으로!

"Hyekyung! I just heard the news, and it seems like your country is going through a difficult time. Do you know about it? It seems like it might affect your family… Are you all okay?"


"혜경! 방금 소식을 들으니 당신 나라가 지금 어려운 것 같아요.

알고 있나요? 당신 가족에게 영향이 있을 것 같은데... 가족들은 괜찮나요?"


친구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TV도 없고, 핸드폰도 없던 때라 나는 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마침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에게 물으니 그는 말했다.


"아시아 금융위기 속에서 한국도 외환 부족으로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됐대. 국가 부도 위기라더라."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남편은 덧붙였다.

"아마 달러가치가 급등해 환전이 어려워졌을 거야. 그래서 그런지, 한국에 있는 친구가 보내주던 후원금도 아직 안 들어왔어."


우리 가족은 최근 뎅기열에서 겨우 회복된 상황이었고, 보험이 안된 나머지 재정을 다 지급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 그리고 적은 후원금 속에서도 매일 기적처럼 살아가고 있었는데, 외환위기 소식에 마음이 더 무거웠다.

점점 비어져 가는 냉장고 안을 보며 불안감이 커졌다.

파키스탄에서 받았던 힘든 재정 훈련의 경험이 다시 위기를 마주한 지금, 담대함을 주기보다는 그때 눌러 두었던 두려움이 서서히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날 저녁, 가족이 얼마 남지 않은 쌀로 밥을 해서 간장과 남은 계란하나를 넣어 비벼 먹으려던 찰나였다.

아래층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베란다로 나가 보니, 동료 선교사들이 비닐봉지들을 들고 서 있었다.

나도 급히 부엌에서 작은 플라스틱 통 여러 개를 들고 내려갔다.


한 선교사가 상황을 설명했다.
"큰 식당을 운영하는 우리 선교 단체를 사랑하는 친구가 그 식당에서 팔고 남은 음식을 매일 이 시간에 보내주기로 했어요. 당신들이 원하는 만큼 가져가세요."

둘러 서 있던 우리 모두는 환호성을 지르며 하나님께 그리고 그 식당 사장님을 위해 감사 기도를 했다.

그리고 행복하게 한 줄로 서서 음식들을 나눠 담았다. 

여러 나라에서 와 일하는 선교사인 우리는 모두 같이 어려운 상황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매운 아시아 음식이었지만 서양 선교사들도 기쁘게 듬뿍듬뿍 챙겼다.

"이 음식은 너무 맵지 않을까요?" 내가 묻자, 그들은 웃으며 말했다.
"지금 이런 어려운 상황에 뭐든지 다 먹을 수 있어요. 괜찮아요!"


나도 기쁜 마음으로 맘대로 가기도 어려운 좋은 싱가포르 식당의 맛있고 값비싼 로컬 음식을 가득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을 불러 노래를 부르며 맛있게 먹었다. 물론 남은 음식은 냉장고에 소중히 넣어 두었다.


밥상을 정리하며 갑자기 베란다에서 울먹이며 기도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방금까지 눈물로 기도했는데, 이렇게 화려한 저녁을 먹게 되다니!"


감정이 널뛰기하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지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해 주신 것에는 정말 감사했다.


다음 날, 친구가 양손 가득 커다란 비닐봉지를 들고 집을 찾아왔다.

그 안에는 쌀, 과일, 고기, 치즈, 우유 등이 가득 담겨 있었다.


"당신 나라가 위기에서 벗어날 때까지 내가 당신을 돕겠다고 결심했어요. 다른 친구들과도 뜻을 모았으니 걱정 말고 선교 일에 집중해요."

그 말에 나는 감사의 벅찬 눈물이 났다.


"친구, 당신은 정말 우리에게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 같아요. 어떻게 우리가 힘든 시간을 미리 알고 전화를 주고 찾아와서 실제적으로 도와줄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당신은 정말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이에요"


평소 눈으로만 인사하던 조용한 친구였는데, 이렇게 큰 사랑을 베풀다니!

그날부터 싱가포르 친구들은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주변의 한국 선교사들도 도와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IMF 외환위기는 우리 가족에게
싱가포르 현지인 친구들로부터 더 큰 사랑과 도움을 경험하게 해 준 시간이었다.

그 친구들과의 우정은 이후 오랜 시간 선교의 동반자가 되는 귀한 관계로 이어졌다.

IMF 위기는 친구를 만나는 기회였고, 우리의 필요를 세밀히 채우시는 하나님이 주신 기적을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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