뎅기열

기적은 항상 우리 곁에 있어요.

by 천혜경

어느 나라든 여름이 되면 모기가 기승을 부리지만, 반가운 존재는 아니다.

그런데 싱가포르는 특히 여름이면 비와 높은 습도로 인해 모기의 천국이 된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습도가 높으면 높은 대로 모기들은 활기를 띠고 사람들을 괴롭힌다.


우리 가족이 싱가포르에서 살던 시절,

모기는 단순히 귀찮은 존재를 넘어 우리의 삶에 깊은 흔적을 남긴 사건의 시작점이 되었다.


우리 가족은 발레스티어 로드의 낡은 아파트에서 선교사님 두 분과 같이 살았다.

이 아파트는 싼 임대료로 인해 우리 같은 선교사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다.

오래된 건물이라 시설은 낙후되었지만, 우리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소중한 공간이었다.

이스라엘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본부인 싱가포르로 돌아온 우리는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며 이곳에서의 생활에 만족하고 감사했다.


싱가포르에서의 생활은 편안했다.

더위도 견딜 만했고, 작은 공간도 아늑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아이를 추운 데서 안고 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큰 위안이었다.

이스라엘에서의 긴장된 사역과 불확실한 상황들에서 벗어나, 우리는 이곳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그러나 행복한 일상도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갑작스럽게 쓰러졌고, 딸마저 고열로 울음을 터뜨렸다.

병원에서의 검사 결과, 우리는 모두 뎅기열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남편까지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아들만 건강한 상태로 남았다.

다행히도 평소 친분이 있던 집사님께서 아들을 돌봐주겠다고 나섰다.

아이들을 돌봐주겠다는 그분의 제안은 큰 위로가 되었고, 우리는 마음 놓고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병실에서 우리는 의사 선생님께 같은 방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각자 다른 방에 떨어져 있는 것보다, 한 방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기도하고 의지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은 우리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우리는 한 병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딸은 이틀 만에 퇴원을 했지만, 남편과 나는 상태가 심각했다.

남편은 계속해서 혈액 수치를 확인하며 수혈 여부를 결정해야 했고, 나는 뎅기열로 인한 합병증으로 신장 기능까지 문제가 생겼다. 둘만 있는 작은 병실 침대에서 서로 손을 내밀어 손을 잡고 함께 기도했다.


“하나님, 여기가 끝이 아니지요? 남편이 멋지게 살아서 해야 할 일이 또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한 일도 후회가 없기에 이대로 주님의 나라로 가도 좋지만, 아이들이 아빠, 엄마 없이 자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힘을 주십시오.”


기도하며 불안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남편의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했다.

혈액 수치가 안정되면서 수혈 없이 회복될 가능성이 커졌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남편의 상황을 두고 "기적"이라고 말했다.

나 역시 신장 문제에서 벗어나며 건강을 되찾기 시작했고, 며칠 뒤 우리는 모두 퇴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병원비라는 새로운 벽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병원비로 약 8000달러가 나왔고, 우리가 가진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약 6800달러를 추가로 내야 했지만, 그 금액을 마련할 길이 막막했다.

퇴원 날짜는 다가오고 있었고, 우리는 초조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문득 싱가포르에 오자마자 팀에서 가입했던 보험이 떠올랐다.

다만, 가입 시 필요한 250달러를 내지 못한 채 미뤄둔 상태였기 때문에 유효한지 확신할 수 없었다.

팀 리더는 보험 담당자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퇴원 날이 다가올 때까지 답변은 오지 않았고, 우리는 남은 병원비를 천천히 갚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퇴원했다.


그날 밤, 우리는 깊은 실망 속에서 기도했다.

어쩌면 보험금으로 병원비를 처리할 수 있다는 희망 자체가 우리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겼다.


며칠 뒤, 보험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가 가입서를 작성한 날부터 보험 효력이 인정되었고, 나머지 병원비를 전액 처리하겠다는 소식이었다.


너무 놀라운 기적이었다.


우리 가족은 서로의 손을 잡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다.

이 기적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끝까지 돌보신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었다.


퇴원 후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데리러 집사님 댁에 갔다.

엄마를 기다렸을 것을 기대하고 갔는데 정작 아이들은 집에 가기 싫다고 말했다.

집사님이 너무 잘해 주셨고, 우리 집 보다 훨씬 크고 멋진 아파트에 수영장까지 있어서 매일 신나게 놀았기 때문에 다시 작은 방으로 돌아가기 싫은 것이었다.

아이들을 집사님이 사준 장난감들을 차 트렁크에 가득 채우고 억지로 집으로 데리고 왔다.

우리는 그 집사님의 사랑과 헌신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하며 그 순간을 가슴 깊이 새겼다.


이 경험은 우리 가족에게 단순한 사건을 넘어 삶의 방향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계기가 되었다.

준비되지 않은 채 시작한 선교사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매번 불안과 두려움에 부딪혔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기적과 천사 같은 사람들을 통해 우리를 붙들어 주셨다.


삶의 어두운 순간마다 작은 불빛 하나가 어둠을 밀어내듯, 하나님의 돌보심은 우리를 새로운 소망으로 이끌어주었다. 그 빛이야말로 우리가 오늘도 어두운 가운데에서도 끝까지 도전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큰 힘이었음을 믿는다.





* 사진 출처: https://pixabay.com. shammiknr 님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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