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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혜경 Nov 06. 2024

갈멜산 기적하나

댄 호텔의 스위트 룸

털털거리고 중간중간 멈추기를 반복하는 차를 몰고 예루살렘에서 하이파로 향하는 길은 쉽지 않았다.


사역을 다 마치고 그곳에 머물기는 숙소비가 상당히 비싸서 그냥 집으로 돌아가려고 결정했다.

차량이 밀리는 시간이었지만 꾸역꾸역 차량대열에 끼어들어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예루살렘 교통은 통제되었다고 길에 서 있던 교통경찰이 다시 돌아가라고 막아섰다.


일단 우리가 가진 재정이 바닥을 보이고 있어서 우선 기름값이 걱정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우리는 왔던 길을 돌아 다시 하이파로 들어왔다.


한참을 달려와 작은 주차장에 차를 세운 남편은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운전대에 고개를 묻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어깨가 떨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가 우는 건지 기도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조수석에 앉은 나 또한 마음이 힘들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여보! 힘들지 수고했어요. 전기도 끊어지고, 수돗물도 안 나오던 시간도 이겨냈는데 도로도 끊기는 것은 정말 처음이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혹시 팔레스타인 국경이 닫힌 것은 아닐까? “


“그러게 마음이 힘드네, 한 순간순간이 쉽지가 않네.. 일단 이 주차장에서 차를 대고 자야 할 것 같네.

주유비 때문에 재정을 아껴야 해”


나는 뒷자리에 앉아 조용히 긴장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상황을 설명하고,

“얘들아 아빠랑 엄마랑 손잡고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나님은 좋은 길을 주셔서 안전하게 우리 집에 가게 하실 거야”라고 이야기했다.

우리 가족은 차 안에서 불안한 마음을 모아 하나님께 기도했다.

기도를 마치고 난 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는지 남편이 말을 한다.


“여보 여기까지 우리가 일하러 왔는데, 갈멜산에 한번 올라가 볼까?

일단 주차장에서 잔다고 생각하니 좀 마음이 편하네,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네”

힘을 내고 다시 생기가 가득한 남편이 얼마나 감사한지 나는 눈물이 났다.


우리가 이 먼데까지 왔는데 이 땅에서 어딘들 못 갈 곳이 있을까!


“여보 그래요 내일 예루살렘 가야 하니까 가고 싶었던 갈멜산 올라가 봐요. 당신 운전할 수 있어요?

이 먼데까지 왔는데 어딘들 못 가겠어요. 당신이 가고 싶으면 가요”

남편은 힘차게 운전대를 잡고 아이들에게 소리를 쳤다.


“얘들아 오늘 춥겠지만 갈멜산의 가을은 멋지단다.
갈멜산에 놀러 가자”


아빠 엄마 사역을 할 때마다 조용히 따라다니던 두 아이들이 갑자기 아빠가 '놀러 가자'라고 소리를 치니 아이들이 참았던 모든 긴장이 사라졌는지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꼬불 꼬불 산을 올라 겨우 겨우 산의 정상까지 올라왔다.

벌써 8시가 다되어 가서 우리는 배도 고프고 저녁도 준비해야 하기에 우리는 식사를 준비할 장소를 찾아다녔다. 갑자기 환한 불이 켜져 있는 호텔을 발견하고 호텔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우리는 꼬질꼬질한 아이들 얼굴이라도 씻기고 화장실을 갔다가 물을 좀 얻어서 다시 내려가기로 했다.


호텔의 의리의리한 화장실에서 아이들을 씻기고 물을 먹이고 나오는데, 남편이 한 남자분과 로비에 서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화려하고 멋진 로비를 누리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남편이 내게 다가와 아이들과 함께 구석의 의자에 앉히더니 이야기했다.


“여보 오늘 오슬로 평화 협정을 할 때 TV에서 당신이 봤던 이즈하크 라빈 총리가 오늘 저격을 당했다네,

그래서 예루살렘에 비상이 걸렸데, 저 호텔 매니저가 알려 주었어. 그리고 저분이

여기 왜 왔냐? 고 질문을 하더라고 그래서 우리가 통제에 걸려서 예루살렘으로 못 넘어갔다고 이야기했더니…

지금 상황이 위험하니 돌아다니지 말라고 하면서 여기서 자고 가라고 하더라고, 나는 그러고 싶은데 갖고 있는 재정이 모자랄 것 같다라고 말하고 가격을 물어보니까, 그분이 얼마를 줄 수 있느냐고 묻는 거야!

그래서 나는 주유비를 빼고 나면 40불 밖에 없다고 하니까…

잠시 미소를 지으시더니 그럼 그 40불로 방을 하나 줄 테니까 그 방에서 쉬고 가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아내와 상의하겠다고 했어. 여보 얘들아 어떻게 생각하니?”


우리는 모두 와우! 세상에.. 그 돈으로 이 큰 호텔에서 잘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 너무너무 놀라웠다.

댄 호텔이었는데.. 보기만 해도 엄청 비쌀 것 같았는데..

아이들도 우리도 눈물이 날 만큼 기뻤다.


그리고 남편은 기다리고 있는 그 남자분에게 가서 이야기를 하고 웃으면서 열쇠를 받아 왔다.

그 남자분은 아이들에게 와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아이고 힘들었지. 여기서 아빠 엄마랑 푹 쉬고 가라 참 한국아이들 착하게 생겼네”

라고 하는 것이었다. 너무 감사한 마음에 고개를 숙이며 그분에게 감사 인사를 여러 번 하였다.


나는 저녁에 먹을 작은 음식을 챙겨 들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호텔 문 앞에 섰다.

문을 여는 순간, 입을 떡 벌어졌다.


그분이 우리에게 준 방은 스위트 룸이었다.
 


문을 여는 순간 방 안의 넓고 아름다운 모습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방이 두 개 있었고, 아이들이 잘 수 있도록 침대도 두 개나 놓여 있었다. 그리고 검은 돌로 만들어진 화장실 안에 금색으로 장식되어 있는 목욕탕이 두 개였다.

이런 호텔방은 생전 처음 보았다.


남편은 이미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우리 둘은 부둥켜안고 울고 있는데 아이들이 따라붙어 우리 네 명은 감사 기도를 드렸다. 역사적 아픔이 있었던 그날 우리 가족에게는 큰 은혜를 입는 날이 되었다.


나는 급히 저녁을 만들기 위해 베란다에서 버너로 불을 붙이고 밥을 했다 하루 종일 먹지를 못해서 아이들도 우리 부부도 허기가 졌기에 마음이 급했다.

하얀 밥과 통조림 햄과 오이지와 올리브, 어디를 가든지 들고 다니던 것들로 풍성한 만찬을 만들어 먹었다.


우리 인생에 순간순간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이처럼 느껴진 적은 없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여정을 아셨을까?
어떻게 우리를 이곳으로 오게 하셨을까?


그냥 얼굴을 씻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자려고 했었는데....


마음이 따뜻한 한 사람의 작은 친절이 네 명의 허기진 영혼을 감싸주고, 우리 가족의 삶에 결코 잊을 수 없는 따뜻한 갈멜산 단 호텔의 기적을 남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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