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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혜경 Oct 30. 2024

안녕! 팔레스타인

도전은 멋진 유산을 남긴다.

여기서 살아야지!

여기가 이제 우리가 살 곳이야!

6살 이후로 어머니가 아프시면서 나는 여기저기 맡겨지고  옮겨 다니며 살았다.

인생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지구 한 귀퉁이에 잠시 들어와 살다가 옮겨야 할 시간이 오면 나는 익숙했던 이별의 아쉬움을 눌러야 했다.

다음 여정을 위해!




이른 새벽, 팔레스타인 집의 창문을 마지막으로 열어본다.

아직 어둠이 남아 있는 하늘은 평온한 듯하지만, 내 마음에는 전쟁 후의 전장처럼 감정들이 얽혀 있다.

공기는 쌀쌀하고, 눈에 익은 거리와 골목들, 가끔씩 들리던 닭들의 새벽을 깨우는 소리들이 나를 배웅하는 것 같다.


부엌에서 식기들을 정리하다가 손에 닿은 낡은 커피잔을 멍하니 바라본다.

이 집을 얻고 들어왔을 때 찻장 안에 가지런히 누워 있던 커피잔이었다.

그 이후로 이 집에서 우리 가족은 전쟁의 기운이 술렁이는 가운데서도 평안한 날들을 누릴 수 있었다.


베다니 동네에서 유일하게 멋진 가든이 있는 집이었는데!...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가든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벽에 부딪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이곳은 우리에게 단순한 머무는 장소가 아니었다.

매일의 드라마틱한 삶 속에서 생존을 위한 기도, 그리고 때로는 하루를 안전하게 보내게 해 주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하루하루를 마무리했었다.


그 집은 이방인 인 우리 가족에게 피난처였고, 때로는 소명을 이룬 곳이었으며, 때로는 훈련의 장이었다.

문을 닫고 마지막으로 한 발짝을 내딛으며, 나는 팔레스타인 땅에 조용히 작별을 고한다.

언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 한편에는 언제나 이 가족 사람들, 베다니 거리들, 그리고 우리가 남긴 소중한 기억들을 깊이 간직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편과 함께 감람산 꼭대기에 올랐다.

긴장하며 매일 오가던 국경의 경계선에 서 있는 군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긴 총을 어깨에 들고 있는 군인들을 아들은 항상 무서워했는데, 이젠 그들이 서 있는 것이 두렵지 않았고 점점 그들을 친근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감람산 꼭대기에 올라가면 예루살렘 쪽이 환하게 다 보인다.

우리 부부는 그 도시를 쳐다보며 눈물로 작별인사를 했다.

어린 두 아이와 발바닥 아프게 엄청나게 걸어 다녔던 먼지가 풀풀 나는 도시였다.

늘 긴장이 감돌면서도 서로를 위해 주는 사랑이 있었던 도시였다.

질리지 않는 오이 피클과 햄 그리고 피터 빵이 있는 도시였다.


그리고 돌로 만들어진 우리들의 작은 창고 안식처는 그야말로 멋진 창작 품이었다.


국경을 넘을 때마다 영어가 어둔한 팀원이 무기가 있느냐는 검문소 군인의 질문에  엉뚱하게 대답을 하여 국경 군인들을 긴장시키기도 했었다.


가래떡을 들고 오다가 폭탄인 줄 알고 잡혀서 그들 앞에서 주섬주섬 먹으며 증명해야 했던 에피소드들 정말 생각할 때마다 아찔하고 다시 긴장하게 한다.


아이들과 함께 감람산을 내려오면서,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는 시간에 함께 한 우리 가족이 깊고 넓게 성장했다고 고백했다.


격동의 순간 속에서 이 땅과 우리가 쌓아 온 사랑과 신뢰는
결코 쉽게 끊어지지 않을 유산을 남겼다고 고백했다.




가난했었고, 안정이 없었어도 우리 가족은 포기하지 않고 우리 인생의 시간들을 보석 같은 추억으로 채웠다.

앞이 보이지 않고 전쟁의 소리에 두려워 떨었지만 우리 네 명의 발걸음은 한걸음 씩 천천히 앞으로 걸었었다.

우리의 여정에 주어진 시간을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달렸다고 솔직히 고백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우리에게 단순한 머무름이 아니었고 성숙과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이방인’이었던 우리가 어느새 이 땅의 한 부분으로 존재했듯이,

팔레스타인의 거친 대지와 햇살, 이 마을 사람들의 따뜻함은 우리 가족에게

'도전하는 삶'은 멋진 유산을 남기는 삶이라고 알려 주었다.





사진출처: frau_singasong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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