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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혜경 Oct 23. 2024

벤 예후다 거리의 빵집

우리 가족의 보석 하나!

벤 예후다 거리는 명동처럼 활기찼다. 

거리의 상점과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도 그곳에는 유럽의 조용한 뒷골목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가 공존했다.

긴 장총을 어깨에 걸치고 떼를 지어 다니는 군인들, 양쪽 귀 아래로 똘똘 말린 머리를 하고 검은 모자를 쓴 남성들, 스카프로 머리를 덮어쓴 여성들, 배낭을 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관광객들, 그리고 아이들이 세명 내지는 네 명씩 함께 다니는 가족들은 항상 그 거리를 가득 채웠다. 

예후다의 다양한 색들은 이미 웨스트뱅크 안에서 살던 우리의 마음을 흥분되게 하였다.

길을 따라 늘어선 나무들은 가을빛으로 물들어 그곳만의 고요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저녁 시간이 되어 일을 다 마치고 번화한 벤 예후다 거리로 향하는 버스를 탈 때면, 아이들의 얼굴에는 설렘과 기쁨이 가득했다. 

그곳에는 우리 가족이 정말 좋아하는 식당이 있었고, 가난한 우리 가족에게 딱 맞는 식당이었다. 

그날도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식당을 찾았다. 


이 식당의 특징은 수프 하나를 구입하면 빵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가게의 한쪽 구석에 빵 코너가 있는데, 그 테이블에는 막 오븐에서 나온 것 같은 빵들이 가지런히 하얀 면에 쌓여있었다. 아이들은 맛있는 수프를 하나 고르고 눈을 반짝였고, 우리는 그들의 해맑은 모습을 보며 잠시나마 힘든 일상을 잊을 수 있었다.


빵집 주인은 자주 가는 우리 가족을 잘 아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빵을 내어주었다. 


“오늘도 잘 먹고 가세요. 빵은 방금 오븐에서 나왔어요 그래서 고소할 것입니다.” 



그녀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우리를 더 편안하게 해 주었다. 

언제나 이 집에 오면 수프 두 개를 시키고 빵은 산처럼 썰어 나눠 먹었었다. 

겨우 수프 2개를 시키고 엄청난 빵을 먹고 있는 것이 사실 좀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그녀의 미소는 잔뜩 썰은 빵을 쟁반 가득 들고 있는 나의 마음을 한결 편하게 해 주었다. 

아이들에게 수프와 빵을 찍어 먹이며 엄마인 나는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풍요로웠다.


“엄마, 이 빵 너무 맛있어요!” 둘째 아이가 입가에 잼을 묻히며 웃었다. 

"엄마 이 수프에 찍어 먹으니까 맛있어요. 엄마도 이거 만들 줄 알아요? 이거 남겨서 집에 갖고 가고 싶어요"

큰아이도 바게트를 수프에 조금씩 떼어먹으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엄마는 식당 주인처럼 이렇게 맛있게 못해, 여기서 맛있게 다 먹고 가자"

아이들의 밝은 얼굴을 보며 나는 가슴 깊이 감사함을 느꼈다. 

우리는 비록 가난했지만, 이 작은 순간들이 우리에게 주는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솔솔 불어 들어왔지만, 빵집의 따스함은 그 쌀쌀함을 잊게 해 주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거리는 갈색과 노란색으로 물들어가는 나무들로 아름다웠다. 

한때 활기차던 여름이 지나고, 이제는 차분한 가을이 찾아온 것이다. 

총을 들고 다니는 군인들의 바쁜 걸음들, 무엇인지 목표를 향해 열심히 걸어가는 검은 모자를 쓴 남자들... 

모두가 심각하게 긴장하며 살아가는 이 시간에, 


한 이방인 가족은 이 작은 빵집 안에서
세상의 긴장과 분주함을 뒤로한 채 잠시나마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작은 손으로 빵을 먹는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웠는지, 우리는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빵을 다 먹고 나니 아이들은 금세 배가 부른 듯했다. 

그들의 만족해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었다.


잠시 후, 우리는 식당을 나왔다. 

차가운 공기가 우리를 감싸 안았지만, 마음속엔 아직도 따뜻한 빵 냄새가 남아 있었다. 

아이들은 손을 잡고 오렌지 빛 가로등 길을 걸으며 재잘거리며 뛰어다녔다. 

우리는 그들의 뒤를 천천히 따르며 길가에 떨어진 낙엽들을 바라보았다.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들은 우리 삶의 순간들이 흘러가듯, 덧없이 스쳐 지나가는 시간을 상기시키는 듯했다.




가로등도 없어 저녁이 되면 암흙 같은 어두움이 가득한 웨스트 뱅크 안에 사는 우리 가족에게는 긴장이 항상 둘러싸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 속에서도 희망과 작은 행복을 찾으려고 애쓰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 당시는 유난히 재정적 어려움도 심했지만 주어진 모든 상황을 누리며 아이들과 함께한 이 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 가족만의 진주 같은 귀한 보석이 되었다. 

 

아이들의 작은 손을 잡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우리의 집으로 향했다. 

벤 예후다의 가을 향기를 두 눈 가득 넣고, 빵집에서 느꼈던 따뜻함을 간직한 채 우리는 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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