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에게 내일 이란?

삶의 역사에 남을 발자국!

by 천혜경

나는 화려한 것을 참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노래가 들리면 춤을 추고, 기쁨 가득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던 아이였다.


싱가포르에서 지내는 동안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분들은 내 마음속 화려한 감성을 하나하나 채워 주셨다
그분들이 이사를 가면서 아름다운 꽃무늬 그릇 세트를 주시기도 하고, 화려한 가방을 선물해 주시기도 했다.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가구와 전자제품을 선뜻 내어 주신 분들도 있었다.


덕분에 집 안은 풍성해졌고, 나는 작은 기쁨들을 쌓아 갔다.

특히, 생일날 남편이 선물해 준 꽃무늬 커플 찻잔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백화점 진열대에서 몇 번이고 바라보기만 했던 그 찻잔을 손에 쥐었을 때, 마치 내 삶에 작은 화려함이 피어나는 것만 같았다.
비록 공동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싱가포르에서의 시간은 내게 따뜻하고 풍성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이 삶은 아무리 좋아하는 곳이라 해서 오래 머물 수 있는 삶이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애초에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잘 알면서도 나도 여자 인가보다 늘 가슴 한편에 화려한 그리움이 남아있었다.


하나님이 이 길을 이끌지 않으셨다면 이방인으로 사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삶은 언제나 떠남과 만남을 반복하는 여정이었다.




남아프리카에서의 시간을 정리하고 싱가포르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마음이 무거웠다.
비자가 허락하는 만큼 머물러야 했고,

다시 이집트로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는 현실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우리는 언제나 제한된 시간 안에서 최선을 다해야 했다.


이방인에게 '내일'은 어떤 의미일까?


비자의 기한을 확인할 때마다, 하루의 소중함이 더욱 선명해진다

어쩌면 우리 삶 자체도 그런 것이 아닐까?


누구나 정해진 시간을 부여받고 이 땅을 살아가니 말이다.

그렇기에 이방인이라는 현실이 그리 슬프지만은 않았다.

결국, 모두가 이 세상의 나그네 아니겠는가!


그러나 익숙해질 만하면 떠나야 하는 생활 속에서, 정든 사람들과의 작별은 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싱가포르에서 만난 사랑하는 친구들을 두고 또다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가슴을 짓눌렀다.


나를 행복하게 했던 화려한 그릇들과 가전제품들, 아끼고 사랑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20킬로 를 들고 다음 여정을 가야 했다.


공항에서 심사를 기다리는 시간은 늘 긴장이 감돌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여정에 대한 설렘도 있었다.


우리의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어떤 만남과 경험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다시 이집트로 향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동안 몇 년 살았던 현대적인 싱가포르의 모습과 피라미드와 고대 유적이 남아 있는 이집트의 풍경이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질서와 혼돈, 현대와 고대가 공존하는 그곳에서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삶을 꾸려가야 했다.


떠나는 순간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 나를 감쌌다.


이번에는 또 어떤 도전이 기다리고 있을까?
새로운 환경에서 나는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까?


혼자 감당해야 하는 순간들이 늘어날 때마다, 이방인의 삶이 결코 쉽지 않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러나 떠남과 머무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은 있었다.
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주어진 순간을 살아내는 것.
그리고 내일을 알 수 없기에 오늘을 더욱 온전히 살아야 한다는 진리였다.


이방인의 삶 속에서도, 내일은 반드시 온다.


그리고 비록 홀로 떠나야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살아낸 순간들, 치열하게 달려온 시간들,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은

삶의 역사 속에서 여전히 내 가슴 깊이 살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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