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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anne Kim Mar 01. 2019

'선택위임'

다수의 선택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

오늘 지하철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목격했다. 출구 계단을 향해 개찰구에서부터 긴 줄이 무려 한 줄로 이어져 있었던 것. 에스컬레이터도 아니고 폭이 꽤 넓은 계단이었는데, 사람들 질서의식이 대단하다 싶었다. 그들 중 몇몇은 앞을 쓱 보고는 갸우뚱해 했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며 줄을 지키는 듯했다. 순간 깨달았다. 이들을 줄 세운 것은 질서의식이 아닌 다수의 선택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 '선택 위임'이라는 것을.


낯선 광경은 아니다. 주변에서도 이런 선택 위임을 왕왕 마주한다. 언젠가 공연을 보고 화장실 앞에 길게 줄을 서 있었더니 남편이 반대쪽에도 있을 거라며 이끌더랬다. 아니나다를까 있었고 아무도 없었다. 나도 모르게 사람들이 기다리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고 그들의 선택을 믿어버린 것이다. 설마 이렇게 가까이에 다른 화장실이 있는데 줄을 서 있을 것이라고는, 이 많은 사람들이 이런 비합리적인 선택을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몇 해 전 남편과 속초 여행을 갔다. 유명하다는 새우튀김 골목에 갔는데 유독 한 집만 줄을 서 있었다. 검색해 보았지만 특별히 유명한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나긴 기다림의 대열에 합류했다. 줄 서는 집에 대한 공연한 신뢰 탓이었다. 다행히 맛은 있었다. 하지만 무난하게 맛있는 맛, 갓 튀긴 새우라면 있을 수밖에 없는 예상 가능한 맛있는 맛이었다. 그 골목 어느 집에서 먹었어도 비슷한 맛이었으리라.


돌아보니 이 또한 선택위임이었다. 아마 처음에는 우연히 두어 명이 앞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지나가던 사람 하나가 우리처럼 공연한 믿음으로 뒤에 섰을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이 그 뒤에 섰을 것이다. 그리하여 줄줄이 앞에 선 이에게 자신의 선택을 위임하는, 점주 입장에서는 뜻밖의 선 순환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비단 이 가게 뿐만이 아니라 종전의 화장실, 지하철 계단도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어쩌면 선택위임의 메커니즘은 우리 생활에서 생각보다 넓은 영역을 관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선택위임 중 제일은 아마 삶의 주요 미션으로 여겨지는 몇 가지ㅡ대입, 취업, 결혼, 출산ㅡ로의 줄 세우기가 아닐까. 나만해도 나름 주도적으로 해온 선택들이라 믿지만 착실히 그 길을 따라왔다. 고3 수험생활을 거쳐 대학에 들어갔고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했다. 5년 만난 애인과 결혼을 했고 어느덧 마지막 미션만을 남겨놓고 있다. 많은 이들이 인사치레로 자녀 계획을 묻는다. 순서의 역행은 선택지에 없어 보인다.


이 미션까지 완수하면 나는 줄 서지 않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분명 영어유치원으로 시작해서 내 집 마련으로 끝나는 또 다른 대열이 손짓하고 있을 것이다. 이리 와서 뒤에 서라고, 너 빼고 모두가 여기 서 있다고, 이 길이 맞다고. 그럼 나는, 우리는 과연 그 대열을 쉽게 못 본 체 할 수 있을까. 다수의 타인들에게 선택을 위임하지 하고 오롯이 주체가 될 수 있을까. 아니, 그 길을 따라 걷는다 한들 그 끝에 있는 것이 우리가 원한 것일까.


오늘 광경을 보고 새삼 다짐한다. 앞에 서있는 많은 이들을 보고 이 길이 맞다 믿어버리지 말자. 고개를 내밀어 보고, 이탈해 걷기를 겁 내지 말자. 길의 끝에 있기를 희망하는 것은 저마다 다르다.




*동아일보 2018.09.05자 게재

http://news.donga.com/List/Series_70040100000163/3/70040100000163/20180905/918386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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